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윤형, 최태섭, 김정근 저 | 웅진지식하우스 2011.04.15

공정경, 시민기자단

 

오늘날 대한민국은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욕 권하는 사회이다. 유명인사 페이스 에서 조차 결국 욕이 등장했다. 그 욕을 보는 이는 속이 시원하다. 때론 그 정도로 되느냐며 댓글로 더 센 욕도 덧붙는다.

욕 나올 일이 발에 차이듯 벌어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노동에 관한 문제이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머리가 안 돌아가 그런 것인지) 맨날 헛다리만 짚고 있는 청년고용정책부터 전 국민의 비정규직을 목표로 둔 듯한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의 노동개악, 박스줍기 조차 경쟁이 치열한 노년층의 일자리까지 노동문제는 전 세대에 걸쳐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미 ‘열정페이’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다. ‘나도 젊었을 때 다 고생했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열정페이에 혹사당하는 젊은이들의 현재 상황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1970~80년대와 지금은 구조적으로 엄연히 다르다. 그때는 평등하게 다 못살았고, 일자리도 많았을 뿐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 어느 정도 재산도 모을 수 있었다. 지금은 자본이 더는 고용을 늘리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화려한 스펙을 쌓고 경력관리를 위해 돈을 쳐 들여도 괜찮은 일자리 구하기는 무척 어려울 뿐 아니라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정말 젊은 세대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도전정신이 없어서 직장을 못 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알 수 있는 책이 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이 책은 열정의 역사와 의미, 프로 게이머와 연예인 / 영화와 문화 산업, IT업계 / 언론고시준비생 / 서비스 직종, 창업과 영업 / 시민단체와 정당의 상근자까지 총 7개 영역에서 나온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첫 시작은 박카스 광고 분석으로 시작한다. 1961년 출시된 박카스는 박정희 정권시대의 혹독한 노동환경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피로회복제 탄생해 지금까지 단연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광고 또한 시대에 맞춰 발 빠르고 감성적으로 만들어 좋은 광고로 인정받고 있다.

박카스 광고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른 생활 청년이다.
“2002년 대선 승리가 유력했던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것에는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결정적인 타격이었다. 고위 공직자와 상류층들의 병역 비리가 덩달아 이슈가 되었던 2003년,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박카스의 광고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인터넷에서는 이 광고를 패러디한 게시물들이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은 ”꼭 가고 싶습니다!“를 시도 때도 없이 외치고 다녔다. (이 청년이 정신이상으로 군을 면제받았을 것이라는 유머도 있었다.)” – 본문 20~21페이지

이 광고는 안보, 조직문화, 시민권, 젠더 등 수많은 심각한 문제를 복합적으로 안고 있는 군대 문제를 묻어버렸다. 박카스 광고들이 다른 사안들은 하나같이 민감한 것들이었다. 청년실업, OECD 1위를 자랑하는 평균 노동시간, 여성노동, 학벌사회, 성 보수주의, 불안정 노동 같은 문제들을 그저 ‘힘내자’라는 말로 덮어버린다. 예를 들어 노약자석을 거부하며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는 광고가 나가자 노약자석은 젊은이들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성스러운 자리가 됐고, 작은 회사에 취직한 젊은이에게 “가서 크게 키우면 되지, 뭐”라고 응원하는 동네아저씨, 옆 건물 야근자에게 “힘냅시다!” 외치는 신입사원, 지킬 것은 지킨다며 통금에 맞춰 여자친구를 집에 들여보내는 순수한 청년을 비롯해 광고는 마치 열심히 사는 청년들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광고는 막상 현실의 청년들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광고를 본 어른들의 눈총과 ‘난 뭐지?’라는 자괴감 속에서 청년들은 마음 놓고 하소연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씁쓸한 다짐을 반복할 뿐이었다. (…) 광고 속 청년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착한 어린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곳에 고뇌와 방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 본문 22~23페이지

‘열정 길이들이기’는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으로 그 대상을 세계나 사회, 타인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만으로 허락한다. 치열하게 살지만, 점점 타인에게는 관심 없는 파편화된 개인들을 만들어간다.

책은 “꿈꿔라. 청춘아, 힘내라. 청춘아, 너희의 큰 꿈을 활짝 펼쳐라!“라는 공익광고협의회 광고를 보면서 청년실업 문제가 국가가 실업의 문제를 청년 개인의 문제로 여기고 있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뜻한다고 말한다. 맞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청년실업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있고 주먹구구 정책만 내세울 뿐 적극적으로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이다.

한 달에 40~60만 원 입주비를 내며 밥, 물, 김치, 개인용 컴퓨터만 받고, 코치들의 감시 속에서 ‘밥-청소빨래-게임-밥-청소빨래-게임-잠’이 일과인 하루 12~16시간 게임연습생, 운동선수, 연예인준비생. 2011년 1월,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했던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 주 80시간 이상 노동을 해도 30만 원 받는 뉴욕 패션 디자인 스쿨을 수료한 4년 차 어시스트. 야근이 일상이지만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전문가라 생각하는 IT업계 종사자. 꿈과 현실의 차이를 알지만 그래도 수년씩 공부하는 언론과 사법고시 준비생. 어차피 여성은 저임금 비정규직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나마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창작자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네일 아티스트. 임금체계를 만들자고 하자 “여기가 돈 버는 직장으로 만들자는 얘기냐!”며 반발했던 시민단체 상근자들의 현실까지 책은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들은 마지막에 말한다. 먼저, 열정을 착취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미워도 다시 한 번, 사랑과 열정을 그대에게!”라며 희망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