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우리들의 이야기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 . G.D.H. 콜 지음. 정광민 역. 그물코. 2015.12.20
손연정, 아이쿱시민기자단
영국 고전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한다. “폭풍의 언덕”의 감성을 자극하는 비극적 로맨스와 유려한 문장도 좋았고 “제인에어” 영화 속의 광활한 안개 낀 대지, 한번쯤 여행하고 싶은 대저택, 화려한 의상들이 주는 미쟝셴들에 혹해 영국고전영화를 섭렵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나 책속의 비극적 사랑에 대비되는 아름다운 문체와 목가적 낭만, 여성으로서 살기 힘든 시대였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다가온 건 없었다.
2015년 12월 11일에 열린 아이쿱 프로젝트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따끈따끈한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란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1944년에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G.D.H. 콜이 썼으며 현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정광민 연구위원이 옮긴 책이다. 제목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1844년부터 1944년까지 100년간 영국의 협동조합사를 다루고 있는데 책을 읽는 중간 불현 듯 그토록 열광한 “제인에어”는 이중 어디쯤의 시대를 살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음에 충격 받았다.
제인에어가 부유한 삼촌 집에서 구박 받으며 살다 기숙학교로 들어가고 여자로서 유일한 직업이랄 수 있는 가정교사로 들어가 거대한 저택과 광활한 농지를 소유한 고용자와 사랑을 하는 어느 곳에도 노동자와 농민의 지난한 삶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나는 결국 낭만주의자였던 것이다. 현실주의자를 꿈꾸면서…
이 책의 저자인 콜은 무슨 주의자였을까? 저자소개에서 그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경제학자, 역사학자, 작가로 소개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교육을 받은 콜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로 유명한 윌리엄 모리스의 저작을 읽고 사회주의자가 되었으며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왔다고 한다.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을 쓴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콜은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라는 책안에서 영국노동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이 한 세기 동안 어떻게 협력과 반목을 해왔는지 서술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탄압받고 협동조합은 인정받고 있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 책은 역사가 아닌 현실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로버트 오언의 전기를 쓰기도 했던 콜은 책 앞부분에 로버트 오언의 오언주의운동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협동과 인간적 연대의 원칙에 기초한 새로운 도덕 세계’를 염원한 오언은 이러한 세계가 경쟁과 착취의 ‘낡은 도덕 세계’를 대체하고 보편적인 박애와 충족의 새 천년으로 가는 길을 안내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낡고 부도덕한 세계의 옹호자인 교회를 정면으로 공격했고 이는 많은 적을 양산하였다. 그가 사회시스템의 완전한 변혁과 이윤추구 자본 기업의 폐지를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이상주의자로서 낙인찍히고 ‘협동마을’이 실패하게 된 이유가 될 것이다.
오언주의 이후 영국은 산업혁명의 고통은 지나가고 있었고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은 변화하는 시대에 적합한 형태를 만들어 가고 있었으며 새로운 노동조합과 로치데일 선구자 조합이 이끄는 새로운 협동조합 운동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고 콜은 말한다.
1844년 12월 로치데일의 허름한 골목길 토드레인에 가난한 직공들이 세운 매장을 협동조합 역사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시대였으며 종교는 어떤 위안을 주었고 이것은 노동계급의 반항정신을 약하게 한 시대였다. 그런 엄혹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협동조합은 협동이라는 상생의 키워드 속에 발전해왔다. 그리하여 현재 부의 편중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일 것이다.
“협동조합 매장이 순정하고 불순물을 섞지 않은 물품만 판매함으로써 신뢰를 얻은 것은 성공의 커다란 기초가 되었지만 이 원칙은 가난한 사람이 조합매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순정물품을 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인이 저소득층의 노동계급에 다가가는데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0년도 더 전인 1940년대에 이 책을 쓴 콜의 이런 견해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일면 맞닿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현재 대한민국의 협동조합 특히 아이쿱은 친환경, 유기농이라는 의도치 않은 서민과의 괴리를 알게 모르게 경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협동조합이 비판받는 주된 이유가 조합원의 정서에 기대어 성장하고 있으며 그 주된 발판이 농업, 그것도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유기농에 있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에 더해 대중들의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도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바닥을 기고 있다.
그는 또한 “임금이 깍이고 실업이 늘어나면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반작용이 매우 커진다. 하지만 이 반작용은 소비자협동조합 매장에서는 완화된다. 그 이유는 가격하락과 협동조합 거래의 대부분이 기초 생필품이기 때문이다”란 견해도 밝히고 있다. 콜은 협동조합은 불황속에서 더 큰 성장을 했다고 기술한다. 하지만 100년도 넘은 역사속에 부침과 성장을 거듭해온 영국의 협동조합과 우리는 많이 다를 것이다. 역사는 고난과 함께 면역도 함께 주었을 터다. 역사와 면역력은 다른데 우리는 초기 자본주의의 야만을 170년도 뒤에 비슷하게 겪고 있다. 이런 면에서 어쩌면 대한민국의 협동조합들은 불황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불황은 코앞에 와 있는 듯하다.
콜은 또한 구매자로서가 아닌 독립된 여성조합원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한 여성길드의 활동, 협동조합운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협동조합인들이 정부의 입법과 행정에서의 역할을 요구한 정치활동, 협동조합의 고용문제. 교육활동등 광범위한 내용을 이 책안에서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길드 지도자들이 협동조합이 비교적 생활이 나은 임금노동자들의 절약 투자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향상을 위한 기관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활동했다는 것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우리가 새겨보아야 할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영국의 협동조합 한 세기’를 보면서 영국의 노동자들과 대중들은 본인들의 삶을 보호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협동조합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비주류로 인식되던 협동조합의 역사를 주류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역사에서는 결코 협동조합이 비주류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역사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라는 E.H.카의 말처럼 이 책안에서 대한민국 협동조합의 희망과 방향을 이야기하고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