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깨어있으라! 격랑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작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소설가) 저. 이한중 역. 한겨레출판사. 2010.09.15.

장향미, 아이쿱시민기자단

독재와 파시즘, 권력의 광기 등을 날카롭게 풍자한 「동물농장」이나 「1984」라는 소설을 읽고 조지 오웰의 작가로서의 능력을 봤다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집을 통해서는 시대적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 나가는 고뇌하는 한 인간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글을 쓰게 된 성장과정이나 배경,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스페인 내전 등의 녹록치 않던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인간의 모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아가며 남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 과정 또한 세세히 그려진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든 글들을 발표한 시기에 맞춰 순차적으로 엮고 있다.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에세이 모음이지만, 문체 구성이 단조롭지 않고 해학과 풍자가 가득해 마치 짧은 소설 같은 글도 있고 또 당대에 논란이 됐던 시사 이슈에 대한 다양한 논평들도 고루 섞여있어 작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03년에 태어난 영국 출신의 작가는 영국의 사립 명문학교인 이튼 졸업생으로서는 유일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주변의 기대를 저버린 채 식민지 경찰이 된다. 동양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외할머니가 살고 있는 식민지 버마로 떠나 그곳에서 5년 동안 근무하다 제국의 식민통치와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안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글을 쓰겠다고 선언한 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혹독한 생활을 하며 틈틈이 많은 글을 쓴다. 제국의 식민지 경찰이었던 ‘에릭 아서 블레어’가 작가 ‘조지 오웰’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이후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오웰은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에 살면서 텃밭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며 글쓰기에만 몰두한다. 그러던 중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민병대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다. 이때를 회고하며 쓴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밝힌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버마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하고, 영국에 와서는 빈곤과 실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게 된 그는 그런 시스템에 맞서 싸우기 위한 당면 과제가 독서 대중에게 영항을 끼칠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책을 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 오웰은 적극적인 사회주의자로 뛰어들지만 도그마에 갇혀 있거나 러시아에 편향된 변질된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폄하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고 있자면 파시즘이라는 질긴 뿌리는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듯하다.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해온 오웰은 이 책에서 문학, 과학, 예술을 망라하는 각양각색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다양한 주제를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견해도 확고하다. 문체가 쉽고 간결하면서 정확하기로 유명한 오웰은 당대 언어의 타락에 대해서도 매서운 질타를 퍼부었는데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든가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 등이 그것이다. 지금의 정치 혼란이 언어의 타락과 결부되어 있으며 언어 문제부터 건드림으로써 상황을 개선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도움 될 만한 글쓰기의 원칙 여섯 가지-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도 제시하는데 새겨볼 만하다.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폐해가 극에 달해 나라와 인종을 불문하고 경제적인 양극화가 심각한 불안한 시대라 그저 당장의 하루를 살기에 급급하다는 핑계로 성찰을 포기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생 동안 스스로가 놓인 현실에서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용감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택한 오웰. 그의 당당한 삶을 받쳐준 정서의 근원이자 미덕은 어떤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온전한 자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그의 치열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