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사회적 경제를 찾는 여행
이영환,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인도네시아를 여행 중이다. 몇 해째 방학을 이용하여 대학원 학생들과 해외 각국의 사회적 경제를 찾아보는 연수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아시아 나라들도 중요한 탐구 대상이다. 나름 산전 수전 다 겪은 늙은(?) 학생들과의 여행은 나름대로 많은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이 제일 좋으냐고 하면 다들 밥해먹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남이 해주는 밥이 그렇게 맛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운명인줄 알고 떨어질 생각조차 못했던 식구들과 잠깐이나마 거리를 두고 객관화시켜 보는 것도,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앞으로의 긴 미래를 위해 아주 좋은 일이라는 깨달음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깊은 밤까지 서로의 인생사를 논하다 보면 각자가 살아온 삶의 두께와 깊이로 인해 ‘정말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이 없구나’ 하는 경외심이 저절로 솟아난다. 깊어가는 별밤 대화에 큰 맘 먹고 가지고 간 책들은 펼쳐볼 기회가 없다.
학생들도 만만한 사람이 없지만, 여행하는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저개발상태라는 선입견 때문에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얕잡아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세상에 만만한 나라는 없다. 이를테면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라는 문화유산을 자랑하고 있고, 필리핀은 19세기 말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수립했을 뿐 아니라, 독재자를 두 번이나 민중의 힘(people power)으로 축출하는 정치적 저력을 과시했다. 몽고는 징기스칸의 역사도 있지만 1920년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고, 네팔은 한 번도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나라이고, 베트남은 미국을 꺽은 나라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와 엄청난 크기의 국토와 해양, 자원 그리고 이슬람과 불교, 힌두교를 아우르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고 있고, 제3세계 비동맹 외교를 이끌었던 나라이며, 오랜 독재체제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진행하고 있는 나라이다. 무엇보다도 아시아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잠재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여행의 소중한 산물이지만, 여행의 공식적인 목적은 이들 나라에서 사회적 경제의 실체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인데, 이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저개발 국가에서 사회적경제의 실체를 탐구하는 노력은 코끼리 다리 만지기 혹은 조각그림 맞추기 같다. 믿을 만한 통계나 논문을 찾기 어렵고, 그 분야 전문가를 만나서 물어보아도 원하는 대답을 듣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질문은 숫자와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결국 현지 사회의 실정과 맞지 않는 공허한 질문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빈부격차와 지역간 불균형 발전이 심각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의 낙후된 지방과 농촌의 우선적인 과제는 경제적, 사회적 개발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경제운동의 역할이 절실하지만, 현지 전문가들의 얘기로 인도네시아의 사회적 경제는 지역별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약하다고 한다. 즉,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의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지원해야 할 정부나 기업의 힘이 미약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문한 족자카르타주의 브라쟌 마을은 1990년대부터 전통적인 대나무 공예를 중심으로 마을의 활로를 찾기로 결심한 마을인데, 7,8년 전부터는 인근의 이슬람대학의 경제개발학과와 연결되어 기술과 디자인 그리고 소액대출 등의 지원을 받고, 주정부의 지원까지 얻어 전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대나무 공예마을로 발전하였다. 주민들의 집은 과거의 대나무 집에서 때깔이 번듯한 현대식 가옥으로 변모했고, 아이들 고등교육 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계나 두레 비슷한 전통적인 협업공동체인 플롬뽁이라는 자생 조직이 살아있는 덕분인 것 같다. 수년 전부터 우리 성공회대학교의 민주주의 연구소가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이 지역에 진출하여 낙후된 농촌마을의 주민들을 조직하고 지도자들을 교육하면서 마을기업을 만드는 일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러한 전통적 자원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도시 지역에서도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테러리스트 출신의 젊은이들의 자활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기업은 이들을 위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 두 명의 전직 테러리스트가 참여하는 외에 식당의 운영은 일반 식당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회적 목적은 분명해 보였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기숙학교에서 직업훈련을 실행하는 교육사업은 민관합동으로 진행되고, 빈곤한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한 지역조직사업들도 여기 저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활동들이 정확하게 사회적 경제활동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국가의 힘이 약한 상황에서 외국의 원조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등에 의존하는 바가 크긴 하지만,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태동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아직 사회적 경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진 않지만, 의식있는 주민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경제운동에 대한 기대 또한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의 근거는 다름 아닌 그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협동경제운동의 전통이다. 비록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광포한 지배 하에서 존재감을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드러나지 않게 민중의 삶을 지켜온 사회적 경제의 전통 또한 만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연유이다. 그러고 보면 인도네시아의 길거리 가게들이나 개인 주택들이 겉으로 볼 때는 초라해 보이는데, 일단 들어가면 꽤 널찍하고 시원스럽게 생긴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고. 사회적 경제는 아시아 민중의 잠재력을 일깨워 잠복된 전통적 협동경제의 힘을 이끌어 내는 열쇠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교통이 부실한 인도네시아에서 출근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이다. 내일 아침 거리를 꽉 메우고 일터를 향할 오토바이들은 일상화된 교통체증의 주범으로 억울한 낙인을 받겠지만, 실상 민중의 뜨거운 잠재력을 보여주는 장엄한 광경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자카르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