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생태계, 세밀화로 그리다

『협동의 터전에서 희망을 만나다』 .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저. 알마. 2015.04.07.

공정경, 생협평론 편집위원

초등학교 개념 사전을 보면 생태계를 이렇게 정의한다. “생태계란 생물이 살아가는 세계. 이 안에서 생물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뿐 아니라 주위 환경과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몇 년 전부터 ‘협동조합 생태계’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 의미는 알겠지만, 구체적 그림을 그리려니 도화지 10분의 1도 그리기 어려웠다.
그동안 출간된 협동조합 관련 서적들을 봐도 커다란 덩어리들만 그릴 수 있을 뿐 섬세한 터치까지는 그려내기 어려웠다.

협동조합 생태계를 일상의 세밀화로 그릴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반갑다.

<협동의 터전에서 희망을 만나다>

지금까지 아이쿱생협의 활동가와 직원은 매년 두 차례 협동조합의 고장으로 해외연수를 떠난다. 해외연수를 통해 현재 고민하는 문제의 열쇠를 찾기도 하고 타산지석으로 조심해야 할 점들도 배웠다. 그 경험과 기록은 다녀온 연수단 보고서와 내부 보고회를 통해 쌓여갔다.
언론인이 동행할 때는 귀한 경험과 자료들이 신문을 통해 두루두루 알려졌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몇몇 사람만 공유할 뿐 널리 알리기 어려웠다.

이 책은 지난해 10월 8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시애틀과 캐나다 밴쿠버 지역 협동조합을 다녀온 연수단이 새롭게 협동조합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펼쳤다.

연수단은 두 도시 10곳의 협동조합을 방문했다. 목차의 제목을 보면서 ‘참 잘 뽑았다’ 싶다.

1. 죽음, 준비되셨나요? (장례협동조합)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테너전기협동조합) 3. 신선한 협동, 60년 (퓨젓소비자협동조합) 4. 무정부주의자들의 터전에서 커피를 마시다 (블랙커피협동조합) 5. 레인쿠버에서 협동조합의 우산이 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협동조합연합) 6. 차는 사는 것이 아니라 타는 것 (모도차량공유협동조합) 7. 열쇠는 당신이 쥐고 있다 (팔로마주택협동조합) 8. 제2의 조국에서 협동을 박음질하다 (말랄라이 아프간 이주여성 봉제공예협동조합) 9. 협동조합, 인생의 업사이클링 (코먼스레드생산자협동조합) 10. 지역을 접수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레이캠협동조합센터)

현재 우리의 삶은 날 때부터 죽어서까지 시장의 영리 대상이 되었다. 책에 의하면 연평균 장례 산업 규모는 5조 원이고, 매장하는데 약 2,000만 원, 화장하는데 1,400만 원 정도 든다.
그뿐 아니라 장례업체들의 횡포로 접수된 고충 민원이 2011년에는 1,509건이라고 하니, 삶을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미국은 8개의 장례협동조합과 90여 개의 비영리 장례업체가 있다. 장례 산업의 높은 가격과 담합으로부터 소비자의 피해를 막고자 1939년 협동조합을 잘 알고 있던 시민들이 비영리 기업을 만들기 시작했다. 죽음조차 협동과 친환경적인 장례방법으로 나누어 매는 장례협동조합을 만나보자.

전기요금을 1만 원 이하로 줄여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저것 줄여보고 가정용 태양광집열판도 달아보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고민만 깊어진다. ‘이건 개인이나 작은 그룹이 접근할 수 없는 차원의, 그러니까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역할 아닌가?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협동조합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미국에는 930여 개의 전기협동조합(배전협동조합 864개, 발전 및 송전협동조합 66개)이 전기 공급 시스템 생태계를 이루며 47개 주, 미국 전체 인구의 12퍼센트(4,200만 명)가 사용하는 전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37쪽)

연수단으로 함께 간 이봉화 씨는 태너전기협동조합을 통해 미국의 전기협동조합 사례와 한국의 전기 공급 시스템을 비교해보며 많은 의문을 해소했고 새로운 질문들을 떠올리는 중이다.

캐나다 협동조합 주택은 1930년대에 시작되어 1970년대에 활성화되었다. 주택협동조합 연합회 조직이 정부를 상대로 압력단체 역할을 해 ‘캐나다주거법’ 입법을 성사시킨 덕분이다. 그 후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는 ‘주거법’에 따라 협동조합에 대출 보조금과 월세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1992년 주택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면서 주택협동조합이 침체하기 시작한다.

“정부의 지원 중단 이후 저소득층에게 심화되고 있는 주택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논의했어요. (…) 우리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You Hold the Key)>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992년까지 시행되었던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119쪽)

주거의 문제는 캐나다나 우리나라나 비껴가지 않는다. 다만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블랙커피’ 이름의 뜻을 묻자 “커피의 색이 블랙이기도 하고 아나키스트들의 상징적 색도 블랙이라 그리 지었다.”고 시크하게 말하는 블랙커피협동조합의 레베카, 아프카니스탄 난민으로 캐나다에 정착하는 동안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사실 모든 순간이 다 힘들었다.”라며 담담하게 웃는 말랄라이협동조합 레일라 할머니, ‘태양의 서커스’ 현수막처럼 예쁜 현수막을 보면 얼른 업사이클링을 하고 싶어 짧은 탄성이 나오는 코먼스레드협동조합의 멜러니까지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 책 속에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으로 실린 장종익 교수의 글을 통해 협동조합 생태계 세밀화를 그리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금융협동조합의 자료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