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는 우리 쌀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정부는 올해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완전히 개방했다. 매년 40만 9천 톤의 쌀을 5% 관세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 513% 관세율만 부담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자유화된 것이다. 그러면 쌀 개방 문제는 당분간 이것으로 일단락된 것인가?

안타깝게도 쌀 개방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작년까지는 쌀 전면개방 여부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이는 싸움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쌀과 관련된 국제적인 여러 협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복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쌀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본격적인 싸움은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쌀과 관련한 통상현안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선은 쌀 협상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설정한 513% 관세율에 대해 미국, 중국, 태국, 호주, 베트남 등 5개 나라가 이의를 제기하여 최종적으로 관세율을 확정하기 위한 협상이 올해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협상의 시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협상 결과에 따라 최종적으로 쌀 관세율이 확정된다. 그리고 이 협상에서는 쌀 관세율 외에 국가별 쿼터, 밥쌀용 의무수입 비중, 해외원조 가능 여부 등과 같은 주요한 사항들도 다루어지게 된다. 과거 일본의 경우 이 협상이 약 57개월간 진행되었고, 대만은 22개월 동안 진행된 바 있다.

이 쌀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한국 정부가 WTO에 통보한대로 관세율은 513%가 적용되며, 의무수입물량에 대한 국가별 쿼터는 없어지고, 밥쌀용을 30% 수입해야하는 의무도 없으며, 우리의 필요에 따라 수입쌀을 해외원조 혹은 대북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작년 농민들의 투쟁이 관세화 개방을 막지는 못했지만 관세율, 국가별 쿼터, 밥쌀용 의무비중, 해외원조 등 세부적인 측면에서 부당한 족쇄들을 없애는 성과를 거둔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5월 정부는 올해 의무수입물량을 수입하기 위한 입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밥쌀용 쌀도 포함시켜 커다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올해 국내 쌀이 남아돌아 쌀값이 폭락하고, 이 때문에 정부가 추가로 약 7만 7천 톤의 쌀을 수매하여 시장에서 격리하는 조치까지 취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밥쌀용 쌀을 수입하겠다고 정부가 억지를 부리면서 농민들의 저항을 초래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밥쌀용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족쇄도 없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의 밥쌀용 쌀 수입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치로 언론과 국회로부터도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로 이 밥쌀용 쌀 수입문제가 두 번째의 통상현안에 해당한다.

농민들의 강한 저항과 여론의 질타 때문에 지난 5월에 정부가 추진했던 밥쌀용 쌀 수입 입찰은 일단 유찰되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찰되었지만 정부는 여전히 밥쌀용 쌀을 수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서 앞으로 언제든지 다시 입찰을 강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는 WTO 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밥쌀용 쌀 수입 문제에서 한국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변명을 내놓고 있다. 가공용 쌀을 수입하든, 밥쌀용 쌀을 수입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이 결정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양보를 해야 한다는 통상관료들의 무능은 끝이 없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쌀 개방과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기 위해 굴욕적으로 쌀마저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호주, 베트남 등 기존 12개 나라 모두에게 양자협상을 동의를 구해야 하며, 동의를 받기 위한 양자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선물을 주어야 하는데, 그 선물보따리 쌀의 추가개방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의 차관보가 국내언론 인터뷰를 일본이 양보한 것처럼 한국도 기존 의무수입물량 이외에 추가로 5∼10만 톤의 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미국에게 양보할 경우 또 다른 TPP 회원국인 호주와 베트남 역시 쌀에 대해 선물을 요구할 것이고, 이는 TPP 회원국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와 쌀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태국에게도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도미노현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쌀 협상은 비교적 대등한 관계에서 벌이는 협상인데 반해 TPP 가입을 위한 양자협상은 한국이 철저히 ‘을’의 입장에서 벌이는 협상이다. 이 두 가지 협상이 동시에 병행되는 것은 쌀 문제에 관해 상대방에게 칼자루를 쥐어주고, 한국이 스스로 칼날을 잡는 것과 같다. 자충수니 자승자박이니 하는 평가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쌀을 지키는 문제의 핵심은 결국 TPP를 막는 것에 있다. 정부가 TPP에 가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쌀에 대해서도 일방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터무니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정부도 레임덕이 오기 전에 올해 안에 TPP 가입을 끝내려고 서두르고 있듯이 우리 농민과 국민들도 TPP를 막기 위한 비상한 관심과 행동이 필요한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비록 미국 내에서 TPP에 따른 피해대책을 둘러싸고 행정부와 의회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어서 좀 늦어지고는 있지만 TPP 협상 자체에 대한 입장차이는 없기 때문에 조만간 미국내 입법절차가 마무리되고 나면 기존 12개 회원국의 TPP 협상이 사실상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한국 정부 역시 TPP 참여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며, TPP를 막기 위한 우리의 본격적인 행동 또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우리 쌀이 삼중고(三重苦)의 통상현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TPP 관련 사안이 핵심이며, 만약 우리가 TPP로부터 쌀을 지켜낼 수 있다면 다른 통상현안들도 무난하게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쌀 문제의 핵심은 TPP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