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건 싫어

『후쿠이생협의 도전』 . 일본생협연합회 지원본부 저. 이은선 역. 그물코. 2012.07.12.

공정경, 아이쿱생협 언론활동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단어 중 하나가 ‘착한00’이다.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착한 어린이, 착한 아내, 착한 남편, 착한 아들, 착한 직원, 착한 가격.
본디 착하다의 뜻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이다.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배려해주면 더 고맙고, 그저 표현의 형식이 사납지 않고 예의 바르면 된다. 내 뜻에 꼭 복종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런 태도의 기본전제는 일방이 아니라 상호라는 점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착한’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자식의 내면에는 별 관심도 없이 성적과 학원만 운운하며 명문대가는 착한 아들이 되라고 꼬드기다 뜻대로 안 되면 성질 내는 엄마(그럼 자기가 지금이라도 공부해서 명문대 가던지), 납품업체에 최소한의 예의 바른 가격은 주지 않고 납품가격을 후려쳐 마트 매장에 전시해놓곤, 마치 대형유통업체가 고객에게 인심 쓴 듯 붙어있는 착한 가격, 진상 고객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착하다는 말 듣는 서비스업종 직원까지, 착하다가 붙어 좀체 귀에 거슬리지 않는 단어가 없다.

협동조합이라고 완벽 전인격적 사람들만 모인 것은 아니니 착한 직원을 찾는 분들이 꽤 있다. 착한 직원 말고 어떤 직원이 있어야 하는지 <후쿠이생협의 도전>을 함께 읽어보자.

이 책의 미덕은 디테일에 있다. 협동조합 구성원 간의 믿음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일본 후쿠이 현은 교토 옆에 있다. 일본에서 살기 좋은 지역 전국 1위로 뽑힌 지역이다. 어떤 게 살기 좋은 것인가? 건강하고 장수한다. 자기 집 비율이 매우 높고 면적도 전국 상위권일 만큼 경제적으로 윤택하다. 인구대비 의료수준이 높아 병원 찾아 돌아다닌 필요가 없다. 초등학생 전국학력조사 전국 2위에 체력은 1위. 후쿠이 현 사람들의 삶을 질적으로 볼 수 있는 지표들이다.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말이 맞다. 부럽다. 이 부러운 지역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후쿠이생협이 있었다. 지역과 생협이 실핏줄처럼 엮여 살아 움직이는 지역이 된 것이다. 시쳇말로 ‘마을 만들기’ 성공사례이다.

이제 마을 만들기 성공사례를 주도한 후쿠이생협 조직 속으로 한 꺼풀 깊게 들어가 보자.
내가 보는 핵심은 이것이다. “즐거운 직원이 조직을 변화시키고 조합원의 칭찬과 격려가 즐거운 직원을 만든다.”
조합원과 직원, 생협조직. 이 3자의 관계가 어떻게 해야 선순환이 될까를 끊임없이 묻고 실험한다.

가정공급의 예를 들어보자. 가정공급 이용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왜 떨어지고 있는지 분석해야 하는 보고서에는 그냥 ‘값이 비싸서’, ‘채소의 신선도가 떨어져서’라는 조합원의 불만사항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지역이 다른데도 보고서의 내용이 거의 똑같았어요.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날까, 조합원들이 정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나? 확인했습니다.”

후지카와 이사장이 말한다.

“실제 조합원들은 ‘어떤 생협 물품이 어느 메이커 물품보다 얼마큼 비싸다, 무슨요일에 받은 시금치가 어떻게 나빴다, 무슨요일몇시에 받은 아이스크림이 녹아 있었다.‘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정보‘가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장 하츠 츠루가 매장을 열다. p.53)

또 하나. 매주 홍보지를 뿌렸다. 그렇게 해서 방문객 수가 늘어나면 다행인데 홍보비용만 늘 뿐 매출이 올라가지 않았다. 2,300명이 넘는 조합원에게 설문지를 받아 조합원의 목소리를 충분히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합원과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소고기를 80% 이상으로 해달라는 목소리가 분명히 나와 있었다. 하지만 축산매장 기준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3분의 1씩이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조합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매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제 본부가 말하는 것은 듣지 말자! 조합원이 말하는 것만 들으며 매장을 꾸려나갔습니다.” (p.68)

몸에 새겨진 명제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날마다 느끼는 깨달음 속에서만 바꿀 수 있다.’였다.

입장을 바꿔, 즐거운 직원은 어떻게 될 수 있을까?
직원 중 2명이 마이스터로 뽑혔다. POP마이스터와 초밥 마이스터이다. 이 둘이 어떻게 마이스터까지 될 수 있었는지 과정이 실타래 풀 듯 세세히 적혀 있다. 혹시 책 읽기는 싫고 비법은 궁금한 분을 위해 친절하게 귀띔해드리겠다. 첫째,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주기. 여기서는 직장 동료들의 배려가 중요하다. 집중이 쌓이고 쌓여야 영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따뜻한 말 한마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면 어떡하지?’ 불안해할 때 ‘그런 말 할 사람 없다.’며 옆에서 응원해준 점장의 따뜻한 인간관계였다. 셋째. 기술 공유. 개인적 역량과 주변의 배려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으면 조직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기술을 공유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친절하죠? 책 안 읽을 분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