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협동조합의 불꽃』. 와카츠키 타케유키 저. 이은선 역. 그물코. 2012.03.01.
이선옥, 생협평론 편집위원
내가 가진 편견 중 하나가 협동조합 운동은 온건하고, 개량주의적이며, 부르주아지들의 운동이라는 편견이다. 어쩌다 이런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체제를 근본부터 갈아엎기 위해 무장투쟁도 불사하는 혁명운동에 비해, 협동조합 운동은 어쨌든 체제 내의 생존과 번영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 그런 선입견을 가지게 했나 보다.
자본주의와 행복하게 결합해서 불편함 없이 살면서 체제전복과 혁명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를 개량주의자라 칭하면서도 삶은 끝없이 이 체제를 교란하고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운동을 하는가가 그 사람의 혁명성이나 개량성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 작은 깨달음을 얻은 뒤 내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 늘 생각하고 교정하고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선입견을 상당히 교정시켜 주었다. 본문을 읽기도 전에 전 풀무학교 교장 홍순명 선생의 추천사부터 그렇다. 아주 오래 전 홍성의 풀무학교에 부임한 젊은 교사의 얘기로 시작하는 추천사는 본문에 집어넣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감동과 울림이 있다. 식민지라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버리지 않은, 아니 오히려 민족이 살 길은 교육과 협동이라는 한 가지 신념으로 척박한 땅에 협동조합의 씨앗을 뿌린 선구자의 이야기.
식민지 시절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 중에는 무장투쟁을 한 독립 운동가들이 있는가 하면, 교육운동이나 협동조합 운동에 매진한 운동가들도 있었다. 무장투쟁이 무력으로 지배권력을 무너뜨려 당장의 식민 지배를 끝내려는 목표를 가졌다면, 교육과 협동조합 운동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하는 미래의 구상까지 담은 운동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시절의 선구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킨 대가로 지금 우리는 독립된 국가에서 여전히 협동조합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1960년대의 시골 홍성, 버스도 없어 읍내까지 6킬로를 걷고, 거기서 편도 24킬로를 버스를 타고 가 학교 안의 매장에서 팔 물건을 구해오던 구판부 학생들. 그들이 예산까지 나가 도매점에서 산 물건들을 새끼로 엮은 등짐에 지고 돌아오면, 선생님은 밤길에 마중을 나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돌아오곤 했단다. 학생들에게 직접 조합을 운영해보면서 그 정신을 배우도록 가르친 선생님. 협동조합 운영을 시작한 어린 학생들이 멘 작은 상자는 그에게 오랜 민족의 꿈을 되살릴 희망의 상자였다고 한다.
이 책은 협동조합 선구자들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싣고 있다. 대부분 일본 협동조합 역사의 선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세이 형식으로 인물에 대한 짧은 설명과 일화들을 설명해두었다. 아주 쉽고 편하게 따라갈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책 한 권이 될 만큼 협동조합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다만 그 구성이 아쉽다. 어떤 기준으로 장을 구성했는지 한 눈에 딱 들어오지 않아 산만한 느낌이다. 이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이 이 사람 같은 일본 이름도 헷갈림을 더한다.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장점이 그런 사소한 단점과 불편함을 덮는다.
협동조합의 상징이 왜 무지개 깃발이 되었는지, 협동조합의 날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 사연을 알 수 있는 것은 보너스요, “협동조합은 어떤 세상에서도, 어떤 시대에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 평화를 실현할 수 있고, 행복한 생활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같은 멋지고 벅찬 말들은 이 책이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