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전면 개방, 이제는 소비자가 나설 때이다.
이필구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사업국장
작년 세월호 사건으로 국민 모두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수상한 현수막이 전국 각지에 내걸렸다. “쌀 관세율 513%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정부, 여당의 주장이 담긴 현수막이었다.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들 입장에선 정부와 여당이 쌀을 지키기 위해 큰 결단을 한것처럼 보이는 문구였다. 하지만 다른 말로 풀어보면 “쌀 관세화는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 놀라운 것은 쌀 시장 전면개방이 올해 1월 1일부터 바로 시행됐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쌀”이 국민적 관심을 받은 사건은 1994년에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자유 무역대상을 공산품으로 한정한 “관세 및 일반 무역에 관한 협정”(GATT)을 깨고 관세를 제외한 다른 모든 교역 장벽의 철폐하자는 협상이 타결 되면서 서비스 상품, 농산품까지 확대 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 결과 만들어진 WTO(세계무역기구)와 WTO협정은 본격적인 자유 무역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하였다. 한편에선 전세계적으로 반세계화 운동 또한 거세게 일어났다. 우리나라 역시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시위가 전국민적인 관심과 참여로 거리에 물결을 이룰 정도였다.
결국 쌀을 주식으로 한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식량안보를 보호 한다는 미명아래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유예하기로 결정 되면서 ‘쌀’만은 지킬 수 있었다. 이렇듯 지난 20년간 ‘쌀’은 다른 공산품이나 농산품과는 달리 식량안보, 식량주권의 상징이면서 최후의 보루였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후보시절 농업은 결코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우리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약속이 무색하게도 식량 주권의 최후의 보루인 “쌀 마저도 민영화하는 정부”라는 오명을 자처하게 되었다.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쌀 시장은 개방하되, 관세 정책으로 국내쌀의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쌀 관세율로 국내 쌀 시장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우리나라 식량과 쌀 자급률 추이만 보더라도 농업 현실이 갈 수록 악화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논 재배면적의 현황을 살펴보면 2000년대 초반 약 100만ha에서 2012년 약 85만 ha로 빠르게 줄고 있고, 식량 자급률은 2012년 기준으로 22.6%에 머물고 있는데,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고작 3.7%에 불과하다. 국내 밀과 옥수수 시장을 세계 5대 곡물 메이저 기업에게 내주면서 곡물가격이 폭등하는 등 독과점의 폐해 역시 이미 겪고 있는 상황이다. FTA,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각종 국제 협상이 진행되는데 그 과정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 등 쌀 수출국들은 한국정부가 제시한 513% 쌀 관세율에 대해서 이미 WTO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이다. 결국 관세율로 쌀을 지키겠다는 발상은 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고려할 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먹거리 안전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자유시장경쟁 논리를 내세워 GMO(유전자변형작물) 옥수수를 식용으로 수입허가 하였고 불과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GMO 작물 수입국가로 연간 800만톤 내외의 GMO 작물들이 수입되고 있다. GMO곡물은 시중에 나와있는 된장, 간장, 콩기름, 주류 등에 원료로 사용되고 있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안전문제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지난 20년간 수출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농업을 희생한 결과, 먹거리 안전과 식량 주권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대량의 이윤을 누리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언젠가 화살이 되어 우리를 향할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식량위기 시대에는 돈을 주고도 먹을거리를 안정되게 확보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쌀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선 생명이고 인권이며 주권이다. 더블어 생활의 기본인 “식의주”문제가 안정되어 더 나은 삶의 꿈도 가능해 진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의 거센 물결로부터 쌀을 지키기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했던 경험을 살려 2015년 다시 불씨를 일으켜야 한다. 생산자가 살아야 소비자도 산다는 단순한 진리를 되새기며 쌀을 지키기 위한 소비자들의 한걸음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