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미래

이정옥,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연구위원

“내가 어릴 때 그렸던 미래 세계의 주역은 초고층 빌딩, 제트기, 로봇이었지요. 지금 어린이들이 그리는 미래는 무엇일까? 뉴질랜드 시골 마을에서 촬영한 「반지의 제왕」의 세계일까?” 일본 팔 시스템 생활협동조합 연합회 야마모토 이사장이 던진 미래 이야기는 한 세대의 변화를 우리 눈앞에 펼쳐낸다.

협동조합은 우리에게 지나간 대안이었다. 농협ㆍ축협ㆍ수협은 금융기관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믿을 것은 우리들 간의 협동이라는 것이 점점 실감으로 다가온다. 10월 17일 한국 푸른평화 생활협동조합 초청으로 한국에 온 일본 팔 시스템 생활 협동조합이사장이 펼친 ‘그리운 미래’라는 화두가 공감과 공명을 울리는 것은 시대정신에 걸맞기 때문이다. 그가 내세운 그리운 미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공생하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커뮤니티이다. “닭이 있고 소가 있고 논밭이 있고 강은 깨끗하고 바닷물고기가 있는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팔 시스템은 135만 명의 회원이 있는 일본의 대표적 생활협동조합이다. 조합원 중 75만 명 정도가 소식지를 구독하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는 다국적 대기업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 건강한 먹거리가 지속가능하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농촌 공동체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주변의 중소기업이 건실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에, 문제가 공명을 얻으면 해결을 위해 서로 ‘협동’한다. 협동을 통해 오키나와의 줄어드는 산호초를 되살리기도 하고 홋카이도의 가리비를 지켜내기도 한다. 값싼 수입산 나무 소비로 상대적으로 불모지가 되는 일본의 숲을 되살리기도 한다. 이들의 협동 정신은 후쿠시마 위기 속에 그 진가가 드러났다. 평소보다 10배가 넘는 생수 주문이 몰려왔다. 생협은 가족 상황을 살펴보고 어린이가 있는 집에 우선적으로 생수를 공급했고 다른 조합원들은 상황을 이해하며 기다려 줄 줄 알았다.

협동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 생협을 통해 판 소고기가 원산지를 속였다는 소비자 제보가 들어오면 5년 전 판매된 것이라도 전체를 다 리콜하고 환불 처리합니다. 신뢰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생산과 가공 유통 그리고 소비라는 과정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과정에는 다 사람의 얼굴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이제는 공정무역을 통해 그리운 미래를 지구적 차원에서 만드는 흐름도 뚜렷하다. 서울에서는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공정무역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평하고 정의로운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하는 무역이다. 세계 공정무역기구에는 세계 70여 개국에 400여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공정무역 도시도 1500여 개에 이른다. 공정무역의 전 세계 매출은 8조 원을 넘어섰다. 2014년 1월 말 기준으로 서울의 사회ㆍ경제 조직은 1,871개소이며 참여 인구는 30만 명에 달한다. 가치를 공유하는 협동의 학습은 공정무역 제품의 소비를 촉진한다.

그리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실천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꿈을 함께 꾸고 생활 속에서 작지만 울림이 큰 실천을 함께하면 된다. 예를 들면 푸른 평화 생활협동조합에서는 유전자 변형이 되지 않은 친환경 먹거리도 만들 수 있고 친환경 에너지원이 되기도 하며 마을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유채 꽃 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유채 꽃씨를 주변에 심으면 된다. 올해 10월에 뿌린 유채꽃이 만발하는 내년 4월에 전국 유채꽃 서밋이 열린다. 받아든 유채꽃씨 속에서 내년 봄에 환하게 필 유채꽃밭을 상상하는 것으로 이미 그리운 미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협동조합을 통해 소비하는 것,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하는 것으로도 그리운 미래를 앞당긴다.

*본 칼럼은 ‘평화신문’ http://web.pbc.co.kr/newspaper 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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