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세대와 협동조합운동
김성오, (협)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이후 한국사회는 협동조합 열병을 앓고 있다. 벌써 5,400여개 이상의 신규협동조합이 생겨났고 협동조합교육은 웬만한 지방정부의 주요한 교육사업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며 관련 서적은 유례없이 팔려나가고 있다. 20여년 전부터 협동조합운동을 하고 있는 필자도 2012년 이전 20여년 동안 수행했던 협동조합강의 보다도 지난 2년여간 진행했던 협동조합 강의 횟수가 약 1.5배 많다. 어디에서나 누구나가 다 이제 협동조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지난 200여년의 세계협동조합운동 역사에서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상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열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중 주력은 소위 ‘80년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미 30여년전부터 몇 년간 민주화 열병을 앓은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 덕분에 한국의 민주화가 앞당겨졌고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장해왔다는 사실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한국의 80년대 세대는 민주화운동을 끝마친후 약 20여년간 사실상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져버렸었다. 간혹 80년대 세대들이 다 함께 공감하는 정치적 담론들이 형성되어 선거국면에서 공동행동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다할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거나 아니면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집단적으로 나선적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조용하게 죽어지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이다.
이러는 사이에 시간은 ‘냉정하고 잔혹하게’ 흘러갔다.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80년대 세대는 결과적으로 두가지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일종의 ‘미필적 고의’ 같은 것이기는 했지만 잔혹한 시간의 흐름을 방조한 것은 두고두고 우리를 가위눌리게 하리라 생각한다.
첫째, 우리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막는데 실패했다. 아니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적이 있었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정규직일자리를 가진 45%와 비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55%로 확연히 갈라졌다. 이로 인한 아픔은 우리 가까이에서, 즉 고등학교 동문모임에서도, 가끔 모이는 집안행사에서도 발견된다. 서로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곳에서 느껴지는 아픔은 살을 저미는 듯한 아픔이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1%와 99%의 양극화 운운과는 질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그저 정치선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왜냐하면 어떠한 99%도 1%에게 상처받지 않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것은 늘상 그래왔던 것으로 인식하고 넘겨버린다. 하지만 45%와 55%의 갈라짐은 너무나 아픈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경이 되도록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채 방치하고 말았다.
둘째, 우리는 한국의 교육문제를 악화시키는데 앞장섰다. 아이들을 사교육에 내몰았고 심지어 사교육시장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이제 한국의 교육은 ‘빈익빈 부익부’를 재생산하고 사다리없는 계급사회를 만드는 주범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세대가 이러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러한 과오들은 당연히 우리자신을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우리 아이들 세대가 고통의 심연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80년대 세대는 숨이 멎는 순간까지 이 과오들을 씻고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사실 오늘날 많은 협동조합들이 80년대 세대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사실은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 되기는 한다.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우리가 저질렀던 과오의 일부라도 씻을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80년대 세대를 고민하면서 현재 벌어지는 협동조합운동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위안적 반성’이라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