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절실하게, 더 가까이: 아이쿱시민협동대학 소감

이일영(한신대 교수,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연구위원)

어느 새 봄인가 했더니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어 한 여름이다. 봄부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세월호 참사로 근 한 달 정도는 참 마음 잡기가 어려웠다. 사연 하나 하나에 눈물이 나고, 강의하면서 학생들을 보면 울컥한 기분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조금은 딱딱한 형식의 학술지에 편집자의 글을 쓰면서도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로 그러 했으리라. 그런데 문제의 뿌리가 너무 광범해서인지, 온갖 소동을 벌이면서도, 힘 가진 이들의 세계는 큰 변화가 없다.

그나마 나라와 사회 구석구석이 성한 곳이 드물다는 절박하고 뜨거운 각성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세상이 단번에 좋아질 리는 없다. 자기 선 자리에서 자기 집을 짓고 또 새로운 길을 내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분주한 중에도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쿱 활동가들의 노력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번 봄 학기 열린 아이쿱시민협동대학의 정치경제과정에 강사로 참여하면서 좋은 자극을 받았다. 과정이 끝난 후 한 수강생의 소감을 전해 들었다. “이일영 교수님의 강의 서두는 지난 시간의 연결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가진 문제의식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만 같아 반갑고 강의를 듣는 내내 한줄기 희망을 보는 듯한 행복감도 느꼈다.” 수강생을 행복하게 했다니 강사로서는 분에 넘치는 찬사다. 오히려 내가 조합과 지역의 작은 세계를 넘어서려는 수강생들의 진지한 열정에 감동받은 바가 크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강의에는 ‘서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이나 대학생이나 성인이나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강의에서는 강사와 수강생이 모두 자신이 누구인가, 무엇을 왜 공부하려고 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이 문제를 바로 수강생들에게 확인해보면 좋겠지만 보통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나는 강의 서두에 자기 고백으로 시작한다. 처음이 가장 어렵다. 수강생이 고백을 잘 받아주면 그 이후는 술술 풀린다. 아이들 말로 인기 있는 상대는 ‘리액션’이 좋은 친구라고 한다. 백번 공감이 된다.

앞서의 수강생 소감에서도 ‘강의 서두’를 지적했다. 호평이지만 그 말의 이면도 생각을 해본다. 내 강의 서두는, 아니 강의 전체가 그런 측면이 있지만, 좋게 이야기하면 ‘종횡무진’이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주의산만’일 수 있다. 강의를 듣고 “생각이 폭이 넓어졌다”는 평도 있지만, “정신이 없다”는 평도 있다. 어떤 특강에서는 사회자가 수강생들에게 강의 내용을 환기하면서 “선생님이 첫 번째 발표 슬라이드를 넘기기까지 걸린 시간은?”이라는 퀴즈를 낸 적도 있다. 학교 강의에서 어떤 학생으로부터 “강의 막판에 진도를 몰아서 나가서 이해가 어렵다”는 불평을 듣기도 한다.

이번 수강생도 “강의가 어렵고 정리가 잘 안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후의 강의가 기대가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반드시 내 강의에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내 강의에서도 뒤쪽으로 갈수록 강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졌을 것으로는 생각한다. 이것은 어쩌면 ‘강의 서두’와 후반부가 잘 연결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15-16주로 구성되는 대학에서의 강의가 아닌 바에야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까다로운 이야기들이 들어가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강의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자기 문제와 연관을 짓지 못하면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만다.

지난 강의를 돌아보면서, 강의 서두에서는 더 절실하게 묻고(切問), 강의 내용에서는 더 가까이에서부터 생각을 끌어내는(近思) 쪽으로 강의법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보니, 어찌 강의뿐일까 싶다. 세상 일 모두에, 더 절실하게, 더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