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배려

정병호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상임고문

ICA(국제협동조합연맹)가 정리해 놓은 협동조합의 가치에 보면 “협동조합은 자조, 자기책임, 민주, 평등, 형평성,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며, 조합원은 협동조합 선구자들의 전통에 따라 정직, 공개, 사회적 책임,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의 윤리적 가기를 신조로 한다.”고 되어 있다.

필자는 오늘 이 글 중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Caring for others)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항상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 갈 것을 요청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잘못을 저지르는 수가 많다. 가령, 전철 안에서 벌어진 일상을 보자. 비좁은 자리에서 자기만이 편히 가겠다고 의자형 다리를 하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서 입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고, 큰소리로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전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 최소한 공동체가 유지되어 가는데 기본적인 타인 배려가 요구된다.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의 실패가 나타났을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되있었다. 영리추구가 “악마의 맷돌”로 나타나고 공해가 계산 불능으로 나타날 때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걸고 나타난 것이 협동조합이었다. 경쟁에서 밀려난 소외세력들이 공동소유와 민주적 관리를 기치로 내걸고 일어선 것이다. 즉, 중심세력이 되지 못하고 주변에 배치된 사람들이 역사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은 나만이 잘난 것이 아니라 너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여기서 사회적 경제이론이 협동조합과 접목된다. 가난하고 어려운 주변부 사람들이 사회세력으로 일어서서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을 하자는 것이다. 나만이 옳다는 고집이 아니라 네 말도 일리 있다는 “차이”의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차이”란 빈부가 중층구조를 이루는 계급사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관이 하나로 지양 제고되는 협동의 사회란 뜻이다.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건설한 돈·홋세 마리아의 “협동조합주의는 다원주의적 세계관과 만난다.”는 철학이 여기에 닿아 있고, 인도 사카르의 “진보활용론”이 여기에 닿아있다. 마르크스-케인스-하이예크를 뛰어 넘어 「거대한 변환」을 제시한 칼 폴라니의 철학이 협동조합과 만난다. 폴라니는 “시장경제에서는 자유로 평화도 없다. 시장주의의 사멸은 자유 평등의 개막이다. 허구로 조작된 시장이 오웬의 <협동조합론>, 푸리에의 <사회주의적 공동생활 단체-파란스텔>, 푸루동의<교환은행>, 루이브랑의<국영공장>, 랏쌀의 <국영공장>으로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주장한다. 안토니오·네그리도 노동의 자기 가치 증식(Self-valorization)을 주장하면서 자율주의적 협동체를 이야기한다. 즉,현대전위 철학들은 한결같이 “타인 배려”의 다층, 다원적 세계관과 만나고 있다.

시장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회적 경제 사회적 협동조합은 타인배려의 철학과 만나고 있다. 타인배려의 철학은 “수인의 딜레마”와 마주한다. 도둑질한 한 사람은 남의 돈을 훔쳐 이익(?)을 보겠지만 다른 여러 사람은 피해를 본다는 말이다. “공유지의 비극”도 그렇다. 공유지에 나 혼자만이 무제한 방목을 한다면 나에게는 이익이 될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으론 무제한 방목을 한다면 결국 공유지는 파괴되고 말 것이라 뜻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요청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화젯거리들은 협동조합의 관련 규정들 속에 내재화 되어 있다. ICA가 규정한 협동조합의 정의, 협동조합의 가치 그리고 협동조합의 원칙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법령에 녹아들어있다. 협동조합은 “사회통합과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일부조합원 등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업무와 사업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일인의 출자좌수는 총 출자좌수의 100분의 30을 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조합원은 출자좌수에 관계없이 각 1개의 의결권과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조합원과 직원에 대하여 상담, 교육,훈련, 정보제공 사업”을 규정하여 앞으로 나가야 할 인지지도를 그리는데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이것은 현대 전위 사상의 골간이요, 협동조합 운동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