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협동조합 생태계를 위한 학습시스템을 만들자!

이정주,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요즈음처럼 사회 경제적으로 앞날이 불투명한 시기에는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행복한 일이다. 오는 12월이면 협동조합법 시행령이 발효된다. 5명만 모이면 누구나 쉽게 법인 사업체로서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복지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정책이 절실했던 정부와 지자체는 협동조합법 통과 이후 가장 서둘러 협동조합 도시, 협동조합 마을을 설계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시장경제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시장 경제의 진입장벽을 넘지 못한 사회적 기업들, 이들도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일이다. 협동조합으로서의 경험이 부족한 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협동조합을 시도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막상 각자 특별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기존의 협동조합들, 대표적으로는 농협, 수협, 산림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그리고 생협은 이번 협동조합 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이 변화가 때로는 한편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동안 고유했던 자신의 영역에 새로운 협동조합들이 들어오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선배 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요구받고 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다양한 주체들이 협동조합 생태계를 어떻게 협력해서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미래는 결정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기존의 판을 버리고 새로운 판을 짜야할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월 말에 한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교수, 베라 자마니교수와의 대화는 매우 의미가 있었다.

나는 자마니 교수에게 ‘협동조합 간의 협동’은 매우 이상적이고 자본과의 경쟁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이지만, 특히 조화로운 협동조합 생태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협동조합 간의 경쟁을 플어가는 방법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물었다. 특히 새로운 협동조합들을 받아들이는 기존의 협동조합들의 역할과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의 원칙에 있는 ‘협동조합 간의 협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협동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협동조합 간의 합의를 통해, 한 지역 안에는 동종 협동조합을 여러 개 두지 않는 방식을 만들어서, 애초에 경쟁 구조를 없애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참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노동운동에서 출발한 그들은 자치적으로 그들의 협동조합의 역사를 만들어 오는 동안 오랜 기간에 걸쳐 통합과 분리의 훈련을 반복했다. 덕분에 그들 나름대로의 조화로운 협동조합 생태계를 만들어 온 것이었다.

또한 자마니 교수는 유럽의 여러 나라의 경우, 특별히 협동조합법 없이도 협동조합이 발달했다고 하면서, 협동조합은 자율적인 조직임을 강조했다. 다만, 산을 오르는 데에는, 앞으로도 오를 수 있고 뒤로도 오를 수 있는데, 어쨌든 산을 오르는 목표는 같다. 유럽의 경우에는 사회가 협동조합을 쉽게 받아 들일만큼 성숙해진 면이 있는 것이고,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가 협동조합법을 만들긴 했지만, 어느 방향이든 협동조합을 통해 뭔가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분명한 것은 덕분에 한국의 협동조합의 역사를 40-50년은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들과 많이 다르다. 따라서 그들의 방식을 지금 그대로 옯겨 올 수는 없다. 무엇보다 지금은 협동조합의 공급과 수요가 불균형을 이루는 시기이다.

협동조합을 꿈꾸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 제대로 경험해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 마구잡이로 협동조합을 양산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기존의 안일하고 소극적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그 누가 일방적으로 그린 그림에 짜 맞추는 것도 맞지 않다. 조화로운 협동조합 생태계를 꿈꾸며, 그 출발선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들떠있다. 모두 협동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각자 자신의 그림을 마구 펼쳐 놓는다. 마치 다 같이 협동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진정 조화로운 협동조합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안의 다양한 주체들이 협동을 위해 풀어가야 할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협동조합 생태계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의 협동조합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물론, 우리 지역에 대한 이해, 새로운 협동조합에 설립에 대한 실천적인 협동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주체들은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소통과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각 영역, 각 지역마다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을 위한 다양한 학습모임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해야 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군가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연구하고 합의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합의는 학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합의 하고 실천하고, 또 합의하고 실천하는 반복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생협은 그 생태계의 한 일원으로서 그동안의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해 온 경험들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떤 협동조합이든, 소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협동조합들의 자율적인 운영과 새로운 사업의 원할한 지원을 위한 공동 자본도 필요하다. 따라서 신협, 새마을금고, 농협 등 기존의 협동조합의 중간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이해관계를 끊고 새로운 협동조합들과 더 큰 협동조합 생태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더 큰 영역을 포용하고, 자기화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는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독려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앞서 가면 안 된다. 자칫, 협동조합의 자발성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지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좋은 파트너로서 대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위해 학습을 같이 하면서 함께 연구했으면 한다. 그래야 서로의 역할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사회마다, 조직마다 성공한 협동조합의 발전과정과 역사는 다르다. 하지만, 그러한 협동조합들의 공통점은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내용을 공유하고, 합의하고 그다음 바로 실천하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지금 이 시대에 협동조합 생태계를 통해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협동’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협동조합 생태계는 어떤 형태인지? 이를 위해 다양한 구성원들은 어떻게 해체, 통합 될 것인지? 협동조합 생태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민주적 운영과 소통구조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협동조합 생태계를 구성할 다양한 주체들이 학습의 결과에 따라 때로는 자기를 깨는 고통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협력자들을 만나는 기쁨을 얻으면서 함께 성장하면 좋겠다. 학습시스템은 바로 그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