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칼럼] 우리 실정에 맞는 협동조합 만들기
정은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협동조합’ 관련 교육과 선진 사례 발표가 봇물 터지듯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언론에서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일자리를 나누고 ‘경쟁’보다 ‘연대’하는 세계 유수의 협동조합이 등장하며 마치 일자리를 만드는 ‘도깨비방망이’처럼 협동조합을 조명하기도 한다. 올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기대하는 바가 자못 크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정부의 지원이란 조건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기업’을 보면,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우린 너무 앞선 지식을 머리에 이고 부러운 이해만 가슴에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세계 각지에 아무리 훌륭한 대안경제가 실현되고 있을지라도 우리 실정에 맞게 고치고 다듬어야만 우리 것이 될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협동을 위한 조직구상은 이제부터 우리의 몫이다.
협동조합은 사회적 약자의 경제사업체로 출발하였다.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제 사업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한 방식이다. 협동조합은 구성원이 추구하는 내용에 따라 사업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협동조합의 사업영역이 시장경제 체제이므로 기업과 경쟁은 피할 수 없으며, 그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협동조합의 구성원이 추구하는 인간다운 삶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시장경제에서 물류효율화를 강조하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경영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과거 소규모 생협들이 전국사업연합을 통해 물류효율화를 시도했을 때 동종 생협에서조차 ‘기업처럼 효율화?’라고 비난했던 경험이 있다. 협동조합을 오해하는 이들 중에는 기업과 경쟁을 아예 기피하거나 협동조합의 경제논리인 ‘호혜의 경제’만 강조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이들의 논리라면 협동조합은 기업이 추구하는 경영방식을 모두 배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고도 살아남은 협동조합이 존재하는가?
사실 우리 사회에도 그동안 무수히 많은 협동조직이 발생하였지만 농수축협과 신협, 생협을 제외하면 대부분 명맥이 끊기고 소멸했다. 까다롭고 복잡한 법·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시장경제가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화를 지배해가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 협동보다 경쟁을 우선시 했던 이유도 크다. 이러한 사례는 농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상품성 있는 농산물은 개별출하하고 상품성 낮은 농산물은 농협에 출하하며, 아무리 가까운 이웃이라도 판매처를 공유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농협이 경제 사업에 전문성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수익이 높은 더 좋은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농촌 민심은 이미 서로 돕는 협동보다 살벌한 경쟁을 택하고 있다.
그러면, 협동조합이 살아남는 조건은 무엇일까? 협동조합 원칙이 자세히 안내하고 있지만,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응은 그 사회가 직면한 경제·사회·정치 구조나 자본주의 발전단계, 현실 정치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현 실정에는 다음 두 가지를 추가로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협동조합이 사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편익은 물론 재무적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창출한 수익을 환원하여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만 협동조합의 사업도 지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 경영자는 기업가만큼의 경영 능력을 갖춘 전문성이 요구된다.
둘째, 협동조합이 사업으로 사회적 편익을 얻으려면 목적이 분명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 대안은 폭넓은 지식과 이해를 전제로 하며, 사회적 편익에 대한 기회비용도 반드시 고려한 전제여야 한다.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지만 수익자와 비용부담자의 만족도가 다르다면 그 경영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 중심인 협동조합 경제가 우리 사회에도 희망을 꿈꾸게 하지만 한편으로 시장경제의 파고는 거세고 경제 불황의 먹구름은 점점 짙어진다. 협동조합 무지개의 부푼 꿈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업에 함께 할 이들과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검토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