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협동조합문화

염찬희 『생협평론』 편집위원장

어느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기까지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1달? 3달? 1년? 절대적인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최소한 1주일 이상은 한 곳에 머물면서 지켜보아야 그곳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1달 이상을 머물러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나는 8년차 생협조합원이다. 협동조합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산지 8년이 지났다. 2004년에 조합원으로 가입을 했는데, 그 당시의 나는 협동조합이 시작된 곳으로 알려진 영국에서 1년을 살고 막 돌아왔을 때였지만, 영국은 협동조합에 무지한 나에게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협동조합과 관련해서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당시 내가 살던 영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는 생협 매장을 쉽게 접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협을 인식하거나 관심을 갖거나 하지 못했다. 나중에 돌이켜 기억을 끄집어 내보니까, 내가 다니던 어떤 길목에 작은 매장이 하나 있었다는 것, 우연히 들리게 된 그 매장이 ‘co-op’ 단어가 들어가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는 것, 매장의 느낌은 한국의 시골 구판장 같았다는 것 정도가 떠올랐다.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을 차로 달리면 닿는 햄프셔 주의 수도인 윈체스터(Winchester)라는 작지만 역사가 깊은 도시였는데, 그곳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대형 매장인 테스코나 세인즈버리를 통해서 식품을 구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 역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그렇게 살았다. 이처럼, 2003년 영국에서의 나의 협동조합 경험은, 현재의 앎을 이유로 기억의 조각들을 헤집어 되살려 낸, 우연히 마주친 생협 매장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 그것이 전부였다.

2004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아이들 학교를 통해서 적지 않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 중 한 분이 생협을 알려주었고, 생협의 활동 취지가 마음에 들어서 선뜻 나서서 조합원 가입을 했고, 마을모임에 비교적 열심히 나가고, 어찌 어찌 지역조합에서 문화위원회 활동까지 하였다. 그러던 중인 2011년에 나는 다시 영국에 1년을 체류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런던에서 동북쪽으로 1시간 가량 기차로 달려서 닿는 인구 18만명이 채 안되는 작은, 그렇지만 윈체스터보다는 큰 도시 콜체스터(Colchester)에 살림을 풀었다. 2011년 하반기에, 7년 만에 도착한 영국에서, 나는, 아마도 협동조합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내 눈에는 어느 곳을 가든 생협 매장, 협동조합 건물이 쉽게 보였다. 실제로 협동조합 활동이 많이 어려웠던 2004년의 영국과 협동조합이 다시 활성화된 2011년의 영국의 분위기는 분명히 달랐다. 영국의 협동조합 매장은 발견이라는 단어보다는 쉽게 띈다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지역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콜체스터 시내 중심가에 협동조합은행, 장례협동조합, 여행협동조합, 주택협동조합들이 백화점, 맥도날드 건물, 우체국 등의 빌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고, 생협 매장은 총 3개가 있었는데, 시내 중심가보다는 주택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싼 지대, 혹은 임대료를 생각한다면 매달 상당한 경상비 지출이 부담스러워서라도 한국에서는 감히 꿈꾸기 어려운 일인데, 영국의 협동조합들은 어째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그 유지가 어떻게 가능할까? 가 궁금했다. 1년을 산 경험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영국인들은 협동조합도 하나의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같은 종류의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기업 중에서 협동조합을 선택하는 이유는, 협동조합은,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조합원들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그래서 사람이 중심에 있는 ‘괜찮은’ 조직 형태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반 기업과는 다른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에서 협동하는 문화에 낯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협동조합은행이 다른 은행들이 있는 소위 ‘은행거리’에 함께 있고, 생협매장은 다른 대형 식품 매장들처럼 사람들이 거주하는 거주지에 자리를 잡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협동조합이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서 인간 중심의 경영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들이 협동조합에 거는 기대는 거기까지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