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인가?
주세운(동작신협 과장)
<기업 소유권의 진화(헨리 한스만 지음)>라는 책을 읽고 있다.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그간 접했던 협동조합 관련 도서들과 구별되는 책이다. 일단 가장 큰 특징은 협동조합을 당위적이고 규범적으로 혹은 절대선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와 같은 소유권의 지평에서 정의할 뿐이다. 저자는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중에서 누가 그 기업의 통제권과 잉여 수취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기업 형태를 투자자 소유 기업, 노동자 소유 기업, 소비자 소유 기업, 비영리기업 등으로 분류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주식회사와 협동조합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협동조합 내의 여러 유형들- 생산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등- 사이의 특징은 다른 것이다. (기본법협동조합 2만개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다종다양한 협동조합의 특성을 다루기보다는 두루뭉술하게 협동조합 일반을 논하는 글들 사이에서 아쉬움을 느끼던 찰나, 저자의 이런 분석은 무척이나 반갑게 다가왔다.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을 통해 그간 당위적인 일반론들이 외면하던 협동조합 현장의 불편함을 다시금 곱씹어보게도 되었다. 그것은 이 책이 나 스스로도 철썩 같이 믿고 있던 협동조합의 도덕적 우위성에 잠시 거리를 두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신협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다. 신협은 금융협동조합이면서, 이 책의 분류에 따르면 소비자협동조합의 한 유형에 속한다. 소비자조합원은 출자를 통해 신협의 자본금을 조성하고 그에 따라 수익에 대한 잉여 수취권을 가진다. 또한 소비자조합원은 선거를 통해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를 선출함으로써, 조합을 공식적으로 통제한다. 국내에서 규모 있는 협동조합은 대부분 이 소비자협동조합 유형에 속한다. 신협을 비롯해서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와 같은 금융협동조합과 생협, 대학생협 등이다. 이 책에서는 이를 투자자 소유 기업인 주식회사와 대비하여 소비자 소유 기업으로 호칭한다.
그렇다면 이 소비자 소유 기업은 과연 투자자 소유 기업에 비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한 형태인가? 그동안의 나는 그렇다고 믿었다. 물론 지금도 일부는 그렇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소속된 기업에서 투자자도, 소비자도 아닌 노동자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소비자 소유 기업과 투자자 소유 기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투자자 소유 기업에서의 노동보다 소비자 소유 기업에서의 노동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동은 그 자체로 사회에서 의미 있는 활동이다. 주식회사에서의 노동이나 협동조합에서의 노동은 둘 다 충분히 귀하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투자자 소유 기업에서의 노동(자)에 비해 소비자 소유 기업에서의 노동(자)은 존중받고 있는가?
흔히들 협동조합에서 하는 말이 있다.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이것만 너무 강조되어서, 기업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압박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기에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비자를 속여도 된다는 식의 주주자본주의적 ‘악습’을 닮아가는 길이다. 동시에 조직의 인적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다.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소비자협동조합 또한 일하는 직원은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다. 안타까운 것은 일부 (신협을 포함하여) 소비자협동조합 조직의 경우 부족한 노동감수성으로 알게 모르게 내부가 곪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조직이 규모화되면 될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인적자원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결코 전체 조합원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조합원 전체를 대신해 군림하는 소수 임직원을 위한 일일 뿐이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보다 윤리적일까? 이 책 <기업 소유권의 진화>를 통해 나는 쉬이 답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협동조합은 어떻게 주식회사보다 윤리적일 수 있을까? 그것은 주주자본주의와 닮은꼴인 ‘조합원은 왕이다’ 식의 언설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배타적이지 않게,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것에서부터 협동조합의 윤리성은 시작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