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부기, 자본주의와 만나다
최은주(재단법인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상임이사)
아름답다는 말 이상의 아름다움에 훌륭한 미덕을 갖추고 있으며 엄청난 유산까지 받은 여인, 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돈을 구하려는 친구, 그리고 그를 위해 자신의 재산인 배를 담보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거금을 빌리고 약속된 기일에 갚지 못하면 정확하게 살 1파운드를 떼어내기로 약조한 안토니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1600)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다. 베니스의 잘나가는 상인 안토니오는 ‘전 재산을 모두 바다에 내보내어’ 유럽 각지에 비싸게 팔 물건들을 배 한가득 싣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인데, ‘재산이 배 한 척에만 실려 있는 것도 아니고 한 곳에만 가 있는 것도 아니며 전 재산이 올해 운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어서’ 배가 도착하기만 하면 ‘(대출계약) 증서의 금액 세 배에 세 곱을 한 만큼의 돈이 돌아올거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탐욕과 잔인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샤일록이 이교도를 배척하는 기독교 중심 사회의 희생자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을 손가락질하고 무시하며 배척하는 베니스 사회의 상징적인 인물인 거상 안토니오. 그는 자신의 상업활동을 회계장부에 어떻게 기록했을까?
이탈리아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도시 베니스(Venezia)는 일찍부터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상업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특히 십자군전쟁 이후 교통로가 발달하여 원거리 무역이 번창하고 동방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아시아에서 실어온 향료와 비단 등의 상품을 유럽 곳곳으로 보내는 중개지 역할을 하였다. 상업의 발달은 거래를 기록하는 회계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며 그 결과 복식부기가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복식부기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고 장부도 남아 있지 않지만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수정되며 오랜 기간 발전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상업거래가 이루어지던 현장에서 필요에 의해 발전해온 복식부기 원리는 1494년에 이탈리아 수학자이자 수사인 루카 파치올리에 의해 『산술, 기하, 비율 및 비례 총론 출판』 중 회계를 다룬 「계산에 관하여」 부분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었고 이 내용이 이후 회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3년 전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았던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메멘토)에서 소개하는 내용에 따르면 파치올리는 건전한 회계의 첫 단계로 자산 목록을 만들어야 하고 일상적 거래를 장부에 기록하도록 하였다. 상인들이 사용하는 장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매일 매순간 일어나는 모든 거래를 일관된 방식으로 기록하는 일인데 이런 역할을 하는 장부가 바로 비망록이다. 여기에는 모든 거래가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실시간으로 기록이 되고 거래를 증명하는 영수증이 첨부된다. 하루의 거래가 마무리되면 장부를 마감하고 비망록에 있는 거래를 간략히 정리하여 분개장에 옮겨 적고 이를 다시 거래의 성격별로 만들어지는 별도의 원장에 정리한다. 원장에 있는 금액을 일정한 서식에 맞추어 모으면 어느 순간에 장부를 열어봐도 그 당시 자산과 부채가 얼마인지, 순자산은 얼마인지를 계산할 수 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바다에 내보내 원거리무역을 하고 있는 안토니오에게도 복식부기는 이미 익숙한 기록방식이었을 것이다. 원거리 무역은 오랜 시간 항해하며 풍랑의 위험을 헤치고 많은 상품을 안전하게 가져와야 하므로 큰 배와 선원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다. 따라서 상인들은 여러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투자받아 해외에서 상품을 사온 후에 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과 이익을 분배하였다. 장기간의 투자자를 안정적으로 모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보장하고 관리자로서의 책임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회계장부를 제대로 기록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고 복식부기가 그 역할을 하였다. 안토니오의 회계장부를 볼 수는 없지만 그 대신 15세기 이후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고 유럽 이외의 다른 대륙에 대한 약탈이 시작되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에 이어 해외무역의 패권을 쥐게 된 영국에서 복식부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참고자료). 이것은 회계史를 연구한 Bryer(2000)가 제시한 것으로 그에 따르면 1630년대 접어들면서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복식부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여 복식부기를 소개하는 책이 경쟁적으로 출간되었고 일반주주들과 이사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대차균형의 원리를 구현한 복식부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상업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등장하였고 이후 주식회사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동행하면서 진화해왔다. 서양 중세시대의 영주들이 수입과 지출을 중심으로 장부를 기록하던 것과 달리 자본을 중심에 두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복식부기의 역사는 회계가 사회적인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활용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참고] 재무상태표(Balance of the Estate)
1641년 4월 (단위: 파운드)
* 현존하는 영국 동인도회사 재무상태표 중 하나
** 출처: R.A.Bryer, 2000, The history of accounting and the transition to capitalism in England. Part two: evidence, 『Accounting, Organizations and Society』, 25. 358쪽.
*** 파운드 미만 단위인 실링과 페니 생략.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으로 구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