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의 힘 – 어떻게 측정하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이예나(쿠피협동조합 조합원)

 

최근에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를 통해 발간된 ‘사회적경제의 힘’이라는 책은 ‘통계 방법론과 해외 사례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출판된 지 두 달여 만에 2쇄에 들어갔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만큼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기다렸던 주제라는 것을 방증하는 듯하다. 책에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경제 영역의 개념과 범위, 구성요소들을 측정하고자 했던 다양한 시도와 관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국가에서든지 사회적경제가 포괄하고 있는 다양성과 혼종성을 다루고 측정하는 어려움과 도전과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사회적경제 조직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참으로 어려운 조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지역성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경제조직인 동시에 호혜성을 운영원리로 삼는 연대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복합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를 측정하고자 하는 열망과 관심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사회적 가치 측정’, ‘사회적경제 조직의 성과 평가’와 같은 이슈들이 대두되는 것을 보면 한국의 사회적경제 또한 양적 성장에 이어 질적인 성숙으로 논의의 초점이 옮겨가는 것 같다.

사회적가치의 측정을 논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이다. 앞으로 사회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그만큼 측정의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것, 특히 사회적경제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들은 그 개념이 추상적이고 범위도 넓어 늘 측정의 문제가 존재해왔다.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을 예로 들어보자. 개방성, 자발성, 민주성, 참여, 협동, 자조, 정직, 공평, 연대와 같은 가치들은 협동조합과 그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가치들이 실현되는 방식과 수준은 매우 다양하다. 협동조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협동조합의 핵심적인 특성들이 추상적인 가치들로 규정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민주적인 운영’ ‘조합원 참여’ ‘자율과 독립’과 같은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들은 쉽게 측정되거나 수치화하여 보여주기 어려운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 참 좋은 모델인 것 같기는 한데 정말 현실에서 그러한가? 보여줄 수 있나? 어떤 성과들을 창출하고 있나?’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협동조합다움’과 그 ‘힘’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회적경제의 힘’이라는 책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사회적경제 통계와 관련된 다양한 시도와 방법론, 관점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의 결론은 다소 허무할 수도 있다. 정답을 보여주기 보다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만 잔뜩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측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현실을 있는 그대로, 100%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측정’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측정 역시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에 주관성이 온전히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데이터 자체가 내포하고 있을 수 있는 편향(bias)의 문제도 유의해야 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엄형식 국제통계담당자는 한 세미나에서 협동조합의 규모나 성과에 관련하여 발표된 통계수치와 실제 현실 간 간극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나 민간의 지원을 받기 위해 가족, 친지나 가까운 지인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그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면서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사업이익을 높이려는 수단적 성격의 협동조합들이 협동조합 관련 데이터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동조합들이 통계적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해당 국가의 경제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통계수치는 상당한 편향(bias)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연구자들이 이러한 현실을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하면서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측정과 통계의 문제는 많은 도전과제를 던져주지만, 어렵다고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측정이 중요한 이유는 측정을 통해 개인과 조직이 스스로를 진단하고 관리와 개선을 위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타인을 설득하고 공통된 이해를 이끌어 내는 데에 유용한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협동조합의 특징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마침 필자가 몸담고 있는 협동조합에서도 이와 관련된 연구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발주한 ‘협동조합 성과지표(Coop Index) 활용가이드 개발 연구’ 사업인데, 이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캐나다와 미국의 노동자협동조합을 대상으로 개발된 CoopIndex 관련 문헌1)을 주요하게 참고하고 있다. 이는 노협의 조합원과 직원들이 자신이 속한 협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측정한 것으로써 총 174개의 문항으로 구성된다. 설문에 대한 응답내용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요인이 약 62%의 설명력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이 결과가 인간 존엄성에 초점을 둔 협동조합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만간 이 지표가 수정 및 보완되어 국내의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진행될 예정인데, 그 결과가 사뭇 기다려진다.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그 가치와 성과의 측정이 갖는 역할은 그저 ‘규범적으로 좋은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좋은 것’, 그래서 내 삶을 바꾸어 낼 힘을 가지고 있는 무엇‘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영학의 구루(guru)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말하였듯이 측정은 관리와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 사랑, 연대와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듯이, 이제 사회적경제의 가치와 성과들이 가지는 힘을 어떻게 드러내고 해석할 수 있을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1) 자세한 내용은 Stocki, R., & Hough, P. (2016). CoopIndex: Human Dignity as the Essence of Cooperative Values and Principle. Journal of Co-operative Accounting and Reporting, 4(1), 79-10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