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계속

주세운(동작신협 과장)

지난 주 신협중앙회 사회적경제부가 주관한 워크샵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는 감회가 새로운 행사였다. 그동안 신협에 거의 유일한(?) 사회적경제 전담직원으로 일하면서, 조직 내부의 의아함과 무관심, 그리고 여러 우려 섞인 반응들을 겪어왔다.

사회적금융은 신협이 사회적경제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가령 지역사회 취약계층에게 신협이 그간 해왔던 직접적이고 일시적인 쌀이나 현금 후원에서 나아가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협동조합의 자금조달을 지원함으로써 취약계층의 지속가능한 자립·자활을 돕는 방식이다. 하지만 신협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 그리고 수익 우선주의 논리 앞에서 사회적금융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 신협중앙회 내에 사회적경제 전담부서가 신설되고, 사회적금융이 중앙회의 중점사업 중 하나가 되었다.신협중앙회가 사회적경제영역의 공동기금 조성에 선도적으로 참여하고 사회적경제 거점신협을 지정하여 전담인력을 양성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한 중앙회의 사업계획을 공유하고 지역조합의 의견을 나누는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나는 큰 격세지감을 느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한 변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은 정책당국의 요구에 부응한 측면이 클 것이고, 내부적인 공감대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조합원이 주인인 신협이 왜 (조합원도 아닌) 사회적경제기업을 도와야 하는가?”

“사회적금융은 너무 위험하고 부실화되기 쉬운 대출이 아닌가?”

며칠 전에도 이러한 내부의 목소리와 맞닥뜨렸다. 어쩌면 현재 신협 임직원 다수가 품고 있는 의구심일지도 모른다. 지난 5년간 내가 속한 신협에서 150건 이상의 사회적경제기업 대출을 취급했고 매우 낮은 연체율을 기록 중이지만, 이는 신협 전체 자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수치로 검증되기에는 아직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기여라는 신협의 운영원칙은 분명하지만, 사회적경제와의 연대를 통한 지역사회 기여는 아직 구성원 다수에게 낯선 관점이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신협 임직원과 지역사회 사회적경제주체 간의 교류와 협력의 경험을 쌓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신협 내부의 공감대 형성도 문제지만, 신협의 변화를 뒷받침 할 지역사회의 공감도 숙제이다. 당장 엄청나게 풀리는 정책금융의 물결 앞에서 신협이 공급하는 사회적금융은 짐짓 약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지역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금융협동조합이라는 신협의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또 하나의 금융공급자로서만 신협을 바라보는 일부의 인식은 아쉽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나 캐나다의 퀘벡처럼, 단순한 금융공급이 아닌 지역사회개발의 주체로서 선도적으로 자본을 공여하는 금융기관이 존재 할 때 얼마나 큰 변화가 가능한지 해외 유수의 사례들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신협이 사회적경제 주체로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개선과 인센티브 부여는 신협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정책금융을 통한 공급량 증대에 더 큰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쏠려 있고, 그간 수익추구에 몰두했던 신협에 대한 불신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협이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모으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워크샵이 고무적이었던 것은 신협의 정체성에 깊이 고민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한걸음씩 내딛고자 하는 전국의 신협인들이 사회적금융 거점신협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는 점이다. 그간 대표적으로 활동했던 일부 신협뿐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신협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던 여러 신협인들이 사회적금융이라는 화두 아래 함께 모인 자리였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신협 내부 곳곳에서 변화를 희망하고 있었다. 워크샵의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조직 내부의 공감대 형성과 지역사회네트워크 구축의 어려움을 공유했다. 중앙회의 중점사업으로 사회적경제를 내걸긴 했지만 중앙회나 지역단위에서나 아직은 내부동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기 모인 구성원들은 적어도 사회적금융이 신협 스스로의 사회적가치 창출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신협이 먼저 사회적경제와 협력하고 연대해야 하는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열띤 워크샵의 뒷풀이에서 누군가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주류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된 소수가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그러한 믿음으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자고. 신협운동은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계속”하는 것이라는 선구자들의 가르침이 새삼 와 닿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