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가 애덤 스미스에게 배워야할 것
김종걸(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
사회적경제가 애덤 스미스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첫째, 인간의 행동원리에는 이기심만이 아니라 도덕감정이 존재한다는 것, 둘째, 국부란 ‘황금’이 아니라 ‘노동’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세계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공감·양심이라고 하는 도덕감정과 서로 보완된다.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공감과 양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의해서 통일되며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윤극대화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의 영리기업은, 사회적 연대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서로 보완되어 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 다음은 노동에 대한 강조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의 후반부의 반 정도는 황금만을 중시하는 중금주의,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꽉차있다. 그 비판의 대상은 오랜 기간 ‘수출입국’의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한국인의 생각방식과 같다. 많은 사람들은 무역수지 흑자만 이루어진다면 경제는 만사 좋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삼성전자와 같은 일부기업만의 성과로 경제를 판단한다. 애덤 스미스는 그러한 사고가 틀렸음을 이야기해 준다. 국부의 원천은 ‘황금’이 아니라 ‘노동’에 있다. 중요한 것은 ‘수출’과 ‘외화’가 아니라 국민의 ‘생산’이며, 특정한 기업 혹은 산업이 돌출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가운데 국민경제 전체가 높은 레벨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바로 사회적경제가 꿈꾸는 사회다.
1. 시장경제의 기초: 이기심과 도덕감정
지금 대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제학 교과서 중 하나인 맨큐(N.Gregory Mankiw)의 『경제학원론』 에서는 경제학을 관통하는 10대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의 길고 긴 책의 내용은 바로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론과 사례로 채워져 있다.1)
①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②선택의 대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그 무엇이다.
③합리적인 판단은 한계적(marginal)으로 이루어진다.
④사람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
⑤자유거래는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
⑥시장은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⑦경우에 따라서는 정부가 시장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
⑧나라의 생활수준은 그 나라의 생산능력에 달려 있다.
⑨통화량이 지나치게 늘면 물가는 상승한다.
⑩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는 상충관계가 존재한다.
위와 같은 내용은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다시 쓸 수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합리적인 사람의 행동은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의 명확한 계산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각 개인의 행동을 가장 잘 조정하는 곳은 시장이며, 정부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그 시장에 개입할 근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거기에도 공짜는 없다. 불황대책을 위한 통화량 증발은 물가상승이라는 비용을 지불한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잘 산다.
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애덤 스미스의 최대의 공적은 인간의 이기심을 ‘종교’와 ‘도덕’의 사슬에서 해방시켰다는 점이다.2) 그의 세계 속에서는 인간의 이기적 행위가 인류전체의 행복으로 전환된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 살지만 그것이 전체를 위한 길이 되는 것, 전체를 위해 나를 희생할 필요 없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살아도 되는 것, 애덤 스미스가 가져다주는 환상적인 마법이었다. 아마도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의 반은 그가 인간의 강력한 본성인 자기사랑(self-love)을 기반으로 하여 시장경제라는 조화로운 세계를 설명했기 때문일 것이다.3)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아주 잘 나타낸다.
인간은 항상 다른 동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단지 그들의 선심에만 기대해서는 그 도움을 얻을 수가 없다. 그가 만약 그들 자신의 이기심(self-love)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발휘되도록 할 수 있다면….그들의 도움을 얻으려는 그의 목적은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것이다….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계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유리함을 말한다. 거지 이외에는 아무도 전적으로 동포들의 자비심에만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4)
인류는 오랜 세월 이기심을 경멸하고 죄악시해 왔다. 상인과 부자는 이기적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어딘가 경멸받아야 마땅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의 이야기는 모든 부자들의 골칫거리를 잘 표현해 준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마태복음 19:16-24).
특히 고리대금업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범위였다.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이 그토록 추악하게 묘사되는 이유는 그가 유태인이기도 했으나 바로 고리대금업자였기 때문이다. 중세서양에서 비록 교황과 주교들의 탐욕과 부정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기독교의 유전자 속에 내재하는 소박함과 자기희생의 정신을 무시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귀족집단의 오래된 관성과 타성에 의존할 수도 없는 신흥 부르주아 세력에게 있어서 자신의 욕망에 정당성을 부여할 새로운 신학과 사상체계는 시급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적극 대답을 해야만 했다. “개개인이 사적인 욕망을 자유롭게 추구했을 때 사회는 질서를 유지하고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애덤 스미스(같은 시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대답은 절묘했다. 바로 ‘자연신학’과 ‘도덕감정’이 가지는 의미다.5)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 생활에 직접 개입하는 분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그저 공기처럼 존재하며 나를 자연법칙처럼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은 신흥 부르주아의 도덕적 부담감을 해소하는 중요한 근거였다. ‘분노’하시는 인격신(Theism)으로부터 ‘법칙’으로서의 하나님(Deism)으로의 전환, 엄청난 사고의 전환이었다. 이것은 뉴턴(Newton)의 ‘중력법칙의 발견’(1687년)과 닮아있었다. 거대한 인력(引力) 망에 의해 우주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창조주는 갑자기 그 법칙을 바꾸지 않는다. 마치 시계 장인이 시계를 만들었으나 그 시계는 정해진 미리 방식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원리와 같다. 근대물리학과 근대자연신학은 인간을 초월한 자연의 법칙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서로 소통하게 된 것이다.
둘째로, 인간 천성에 내재하는 공감능력과 양심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능력과 자신을 견제하는 양심이 존재하다면 우리로 하여금 그리 막돼먹은 장사치나 악독한 사용주로 치닫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principle)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는 종류의 감정이다.6)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것을 애덤 스미스는 ‘공감’(sympathy)이라고 부르며 도덕감정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증명할 필요조차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며, ‘무도한 폭도(暴徒)와 가장 냉혹한 범죄자들에게도’ 발견되는 속성이라고 말한다. 공감능력과 함께 스미스가 강조한 또 다른 인간의 속성은 바로 ‘양심’이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공정히 바라보는 ‘공평한 구경꾼’(impartial spectator)이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연구로 유명한 이근식 교수는 공감과 양심의 2가지 원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공감의 원리가 스미스 윤리학의 출발이고, 공평한 구경꾼(양심)은 그 완결이다. 윤리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자기규율이기 때문이다.”7) 이로서 인간의 이기심과 공감·양심은 서로 보완하는 사이로 통일된다.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공감과 양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의해서 견제되고 보완되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스미스와 맹자가 수천 년의 시간을 두고 인간본성에 대해 같은 인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갔던 맹자는 인간본성의 선함을 믿으며, 그 선한 본성이 인간을 인의예지의 세계로 잘 이끌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과 ‘남에게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을 잘 발견하는 것(맹자공손추(상):31)은 스미스의 ‘공감’의 개념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같은 사단(四端)론을 구성하는 ‘잘못된 것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은 스미스의 ‘공평한 구경꾼(양심)’ 개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근본적인 차이는 있다. 맹자에게 있어서 이기심(사익)은 배척해야 할 대상이며, 의로움(공익)과는 명확히 대칭되는 개념이다. 그에게 있어서 사익의 세계는 “만족을 몰라 서로 빼앗게 되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이익이 아니라 어짊과 의로움만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맹자』 책 처음에 나오는 양혜왕과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8)
양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노인께서는 천리를 마다않고 오셨으니 틀림없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 줄 방법이 있으시겠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이익만을 말씀 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어짊과 의로움(仁義)이 있을 따름입니다.
임금님이 무엇으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 주겠는가 물으면, 대부(大夫)들은 무엇으로 우리 집안을 이롭게 하겠는가 묻고, 사(士)와 서민들은 무엇으로 나를 이롭게 할 것인가 묻습니다. 그러면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진실로 의로움은 뒤로 하고 이익을 먼저 추구한다면,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질면서도 그의 부모를 소홀히 한 사람은 없었으며, 의로우면서도 그의 임금을 뒤로 하였던 사람은 없습니다. 임금께서도 어짊과 의로움에 대하여 말씀하시면 그뿐이실 터인데, 어찌하여 굳이 이익에 대하여 말씀하려 하십니까?(맹자양혜왕(상):1).
인간본성 속에 존재하는 공감과 양심을 강조한 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많은 학자들의 공통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특징은 근대자본주의에 맞게 서로 대립되는 가치관이었던 공익과 사익을 결합시키고 그 속에서 인류 진보의 가능성을 피력했다는 점이다. 근대적 가치관의 시작인 것이다.
2. ‘황금’에서 ‘노동’으로
이제 애덤 스미스의 관심은 ‘국부(國富)의 원천’으로 넘어가게 된다.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인식전환 중 하나는 부의 원천이 금(金)과 은(銀)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을 가장 잘 대변한 것이 애덤 스미스였다.스미스는 금은의 확보를 위해 보호무역을 하는 행위를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e system)라고 명명하고 격렬히 비판했다. 스미스의 조어(造語)인 이 단어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상업으로 연결되고, 영국과 일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되던 시절인 16-18세기 절대왕정 시기의 경제사상이었다.9) 많은 나라들은 금과 은의 직접적 유출금지, 외국숙련공에 대한 우대, 신기술에 대한 우대(독점권부여), 중요자재 수출금지, 식민지와의 독점무역, 운송독점(항해법) 등과 같은 보호무역과 국내산업 육성정책을 실시했다.
국부가 금과 은이라는 사고방식(重金主義, billionism)은 오랜 세월 인류가 공유했던 생각이었다. 애덤 스미스도 “간단히 말해서, 부와 화폐는 통상적인 용어에서는 모든 측면에서 동의어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중상주의도 역사적으로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전기의 특징은 그야말로 ‘금은중시’의 사상이었다. 후기에 들어 약간 달라진다. 후기 중상주의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토마스 먼(Thomas Mun, 1571-1641)은 단순한 ‘금은중시’에서 ‘무역흑자를 통한 금은 확보’(balance of trade system)로 생각을 전환했다. 1600년에 설립된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인도에서 향료를 수입하고 그것을 재수출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문제는 수입을 하는데 귀중한 은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중금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게 되자, 동인도회사의 이사(director)로 근무하던 토마스 먼은 “화폐는 무역에 의해 획득되나, 그 전에 자본으로서 화폐의 사용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표적 중상주의자였다. 그러나 중상주의자로서의 한계는 분명했다. 애덤 스미스는 먼의 저서, 『잉글랜드가 외국무역으로부터 얻는 부(England’s Treasure by Foreign Trade)』(1644년)가 훌륭한 저서이기는 하나, 국내상업은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먼은 “상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국내상업, 즉 동일한 크기의 자본이 가장 큰 소득을 제공하고 그 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국내상업은 단지 외국무역의 종속물”로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담스미스에게 중요한 것은 외국과의 무역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국내에서의 ‘노동생산물’인 것이었다.10)
토마스 먼의 생각은 오랜 기간 ‘수출입국’의 사고에 젖어있는 한국인의 생각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많은 사람들은 무역수지 흑자만 이루어진다면 경제는 만사 좋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수출지상주의가 초래한 편견이다. 애덤 스미스는 그러한 사고가 틀렸음을 이야기해 준다. 국부의 원천은 ‘황금’이 아니라 ‘노동’이다. 중요한 것은 ‘수출’과 ‘외화’가 아니라 국민의 ‘생산’이다. 그리고 그 생산을 규정하는 것은 유효한 노동력의 참여와 노동생산성인 것이다.
그러면 노동생산성은 어떻게 증가하는가? 스미스의 결론은 바로 ‘분업’의 역할이었다. 그는 그 유명한 핀 제조업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혼자 만들면 핀은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20개 이상 못 만든다. 그러나 핀 제조공장에 가보면 18개의 독립된 작업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러한 분업을 통해 4,8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 ①전업(專業)으로 노동자 각자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②한 가지 일로부터 다른 일로 옮길 때 보통 허비하게 되는 시간이 절약되고, ③노동을 수월하게 해주고 단순하게 해 주는 많은 기계의 발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11)
이 분업의 망은 작업장 내, 작업장 간, 산업 간, 국가 간에 이루어질수록 노동생산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자유시장거래가 가져오는 이득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스미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5대양 6대륙을 주름잡던 산업강국 영국인들이 공유했던 공통인식이었다. 또한 산업이 발전한 영국이 남미대륙에 거대한 은광을 소유한 스페인보다 그리고 막강한 무역국가 네덜란드보다 강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이기도 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년)는 그의 저서 『영국경제의 구상』(1728년)에서 네덜란드에 대비되는 영국 경제의 강점이 바로 활발한 국내 시장에 있으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수출로 연결되는 경제구조에 있다고 강조했다.12) 그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도시건설 구상을 설명한다. 먼저 미개척지의 토지를 가진 지주가 중앙에 도시건설을 위한 땅을 남겨두고, 주변 토지를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개간시키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후 도시지역에 거주할 상공업자를 모집한다. 상공업자에게는 주택과 정원을 지을 땅을 10년간 무상제공 하고, 건축을 위한 자재 또한 무상제공 한다. 그곳에 정육점, 빵집, 대장간, 피혁 가공업자, 도공, 이발소 등이 줄지어 들어오고, 건축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목수, 미장이, 기와제조 장인들이 입주한다. 나중에는 교회와 묘지가 생겨나고, 숙박시설, 선술집, 호텔들도 건설된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면, 그들의 부인들이 일할 모직물, 견직물 공장들도 생겨나게 된다. 도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소개한 일본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오오츠카 히사오(大塚久雄)는 그의 『국민경제』라는 책에서 디포의 의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13)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분야의 필수공업생산이 발전해서 조밀한 상품교환관계의 망을 전국적으로 펼쳐나갔다. 상품교환을 전제로 한 사회적 분업의 자립적인 국민적 체계를, 나는 ‘국민경제’라고 부르고 있으나, 18세기의 영국은 타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광대한 국내시장을 만들고, 국민생활의 재생산에 필요한 주요한 산업부분을 국내에 배치하여 강력한 ‘국민경제’의 기초를 이미 만들어갔다. 앞에서 소개한 디포의 도시건설구상도 이러한 상황을 모델로 잘 설명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국민경제(국내시장)의 토대 위에 성립된 것이다.14)
오오츠카의 ‘국민경제’라는 개념은 1970-80년대 한국으로 수입되어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유인호의 『민중경제론』의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만들었다. 강조되었던 논점은 ‘경제 재(再)생산의 주요부분이 국내에서 순환되는 것’이 필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수출주도형 공업화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독법(讀法)은 다르다. 디포의 논리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회적 분업’의 망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어디에서나 동심원처럼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커지고 교통이 발달할수록 그 동심원의 구조는 더 조밀하고 더 멀리까지 퍼져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경제적 참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한 산업이 돌출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가운데 국민경제 전체가 높은 레벨로 발전해 가는 것, 그것이 디포가 생각했던 영국 산업의 미래였으며, 애덤 스미스 또한 이러한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15)
그러한 면에서 이제 우리도 그만 낙수효과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 개발연대와 같은 재벌대기업의 눈부신 성공이 대한민국 경제 전체의 성공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재벌대기업 성장의 온기가 사회 전체로 퍼지지 않으며, 그들의 혁신은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재벌대기업으로부터가 아니라 한국경제를 구성하는 기초단위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혁신의 경로가 설계되어야 한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 골목상권까지 노동의 참여와 혁신이 확산되는 것, 청년백수, 경력단절여성, 장애인, 고령자까지 참여하는 것, 높은 빌딩과 거대한 산업시설만이 아니라 마을 앞 공터,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 자투리 공간까지 주민 참여의 새로운 활동공간으로 거듭나는 것, 애덤 스미스가 바라봤던 ‘국부의 형성과정’이었다.
1) N. Gregory Mankiw, Principle of Economics(김경환·김종석 옮김, 『맨큐의 경제학』(제3판, 김경환·김종석 옮김, 2005년) 1장 참조.
2) 애덤 스미스(1723-1790년)는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 태어나, 글래스고(Glasgow) 대학과 옥스퍼드(Oxford) 대학에서 공부한 후 1748년부터 모교의 글래스고 대학에서 도덕철학의 교편을 잡았던 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이다. 1759년에는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박세일·민경국 번역, 『도덕감정론』, 비봉출판사, 2009년)를, 그리고 1776년에는 『국부론』을 출판하여 전 유럽에 명성을 얻게 된다. 1778년에는 스코틀랜드 세관장(commissioner of customs)을 거쳐, 1790년에 사망한다.
3) 이근식 교수는 애덤 스미스가 자기사랑(self-love)과 이기심(selfishness)을 구분했다고 말한다. ‘자기사랑’은 공정한 규칙을 지키면서 남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은 범위에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했으며, ‘이기심’은 무분별한 탐욕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국부론』에서는 ‘selfishness’란 말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self love’나 ‘self interest’란 말이 사용된다고 한다. 이근식, 『애덤 스미스 국부론』(쌤앤파커스, 2018년), 122쪽. 이근식 교수의 2018년의 책은 2006년에 출판된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에크리)의 내용을 한국사회에 던지는 시사점 중심으로 새롭게 요약정리해서 쓴 책이다. 애덤 스미스 저작에 대한 전반적인 해설은 2006년 저작이 더욱 자세하다.
4) Adam Smith,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김수행 번역,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2003년), 17-18쪽.
5) 자연신학과 도덕감정론이 근대 시민사회의 운행원리로서 가지는 의미는 박세일,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체계」, Adam Smith,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박세일·민경국 번역, 『도덕감정론』, 비봉출판사, 2009년)의 해제(661-699쪽) 참조.
6) 애덤 스미스의 전게서, 『도덕감정론』, 3쪽.
7) 이근식의 전게서, 『애덤 스미스 국부론』, 70쪽.
8) 공자와 맹자에 대해서는 본서의 보론(「세상은 어떻게 개혁되는가?: 공자와 맹자」) 참조.
9) 중상주의에 대해서는 이토 마코토(伊藤誠), 『???史』(有斐閣, 1996년)의 제1장 참조.
10) 전게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상)』, 제4편1장 참조.
11) 전게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상)』, 제1편1-3장 참조.
12) 18세기 영국에서 대표적인 정치·경제전문 기자였으며, 엄청난 지식의 소유자였던 대니얼 디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쓴 이유는 근대인(경제인)의 인간상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로빈슨 크루소는 난파선을 벗어나자마자, 가용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하여 생산하고 소비한다. 일정한 땅을 구획하여 농지를 만들고(엔클로저), 산에 있는 산양을 잡아다 가축으로 삼는다. 양의 가죽과 털로 의복과 우산을 만들고, 흙으로 도자기 같은 생활용품도 만든다. 원주민 프라이데이를 고용하여, 일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고, 다시 생활용품을 그에게 판매한다. 로빈슨 크루소의 일기장에는 1년간의 생산과 소비를 기록하고, 일종의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도 작성한다. 근면, 절약만이 아니라 계획에 입각한 면밀한 계산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근대경제인의 행동양식(합리성)을 잘 표현한 것이다.
13) 오오츠카 히사오(大塚久雄), 『?民??; その?史的考察』(大塚久雄著作集 제6권, 岩波書店, 1969년)의 7-24쪽 참조.
14) 大塚久雄의 전게서 『?民??』의 18쪽.
15) 역사적 사실에서도 영국의 경우에는 농민층분해과정의 승리자인 상층농민들이 산업자본가로 전환되어 갔다는 연구가 지배적이다. 이들이 지역상권에서 유통되는 술, 양초 등과 같은 상품들을 공장제수공업(매뉴펙쳐)의 방식으로 공급하고, 특권상인들과 대립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민혁명으로 귀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