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협동조합, 지금 여기보다 그 어디엔가로

『스웨덴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 . 아너스 오르네 저. 이수경 역. 그물코. 2015.03.25.

공정경, 생협평론 편집위원

협동조합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현재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 분야의 범위에서 큰 역할을 하리라 눈여겨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너무 우습게 본 듯하다. 협동조합으로 경제뿐 아니라 노동의 문제, 국가, 사회개조까지 가능할 줄이야.

<스웨덴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

원역자의 서문을 보자.

“이 책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 자체가 오르네의 웅변과도 같다. 오르네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역에서 많이 논의된 바 있지만, 오르네 덕분에 스웨덴이 협동조합 사상과 이론의 지도에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비평가와 지지자 모두가 동의한다.” (21쪽)

스웨덴협동조합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커다란 성과를 이룬 시기는 1908~1935년일 것이다.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 1937년 당시 스웨덴 인구의 3분의 1이 소비자협동조합 활동가라고 하니, 현재 스웨덴 사회에서 보이지 않은 부분까지 협동조합 모세혈관이 흐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자인 아너스 오르네는 이 시기에 스웨덴생협연합회 현장에서 15년 동안 일했고,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이끌기 위해 노동당에서 16시간씩 일했던 사회민주주의자이다. 또한, 스웨덴생협연합회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후에는 체신부 이사를 지낸 공무원이기도 하다.

저자가 초판에 이 책을 쓴 이유를 “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사업방식에 영향을 주는 사상과 문제점을 논하면서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의 특성에 대한 지식향상에 공헌하고자 한다.” 라고 언급했다. 당시 저자는 협동조합이 독점기업과 싸워 완벽하게 이기고, 협동조합으로 스웨덴 사회에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리는 과정을 봤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경제영역으로만 한정 지어 말하지 않는다.

4장 협동조합과 민주주의에서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와 운명을 같이한다.”라고 강조한다.
“소비자협동조합의 규모는 조합원이 20~40명 있는 두메산골 매장부터 수만 또는 수십 만의 조합원을 자랑하는 대도시 조합, 수천 명의 노동자와 직원이 있는 도매협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 이미 알려진 모든 종류의 민주주의 실험을 발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 민주 정부에 대한 이론을 잘 모른 채,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이 자신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개척해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실험을 연구하는 것이 더욱 흥미롭다.” (103~104쪽)

이 장에서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할 부분은 대의제이다. 대도시에서 민주주의를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대의제는 필수불가결하다. 현재 각 지역조합 총회 때 대의원을 추천하는데 사실 인원수 채우기도 급급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역모임에서 조합원이 직접 뽑은 대의원으로 총회를 구성해야 대의제가 실질적으로 제대로 작동한다. 올해 아이쿱생협은 각 조합 마을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제대로 길을 밟고 있다는 의미이다.

6장 협동조합과 경쟁에서는 경쟁과 경합이라는 단어를 눈여겨봤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가정 내의 경쟁을 없앴지만, 소비자 요구 충족 차원에서 협동조합이 아닌 경쟁 기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협동조합은 이러한 경쟁 상대가 있는 게 조합 발전에도 유일하다고 여긴다.” (140쪽)
“경합은 고객층이 서로 다른 기업 사이의 경쟁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마을이나 나라 또는 대륙에 있는 두 잡화점은 서로 경쟁할 수 없지만, 누가 더 뛰어난 활동결과인지를 놓고 경합할 수는 있다. 실제 이러한 경합은 스웨덴 협동조합 발전에 많이 기여했다.” (141쪽)

경쟁(競爭)과 경합(競合).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같은 말이라고 나오는데 한자를 보면 뒷글자에서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경쟁의 쟁(爭)은 다툰다는 의미이고, 경합의 합(合)은 모은다는 의미이다. 왜 아너스 오르네가 협동조합이 아닌 경쟁 기업에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당당하게 싸우고, 협동조합끼리는 경합이 필요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7장 협동조합과 노동에서는 현재 아이쿱의 임금정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협동조합 운동은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합당한 임금을 지급하고, 해당 지역의 관련 업계에서 얻은 혜택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우세하여 민간 기업이 별 볼 일 없다면, 비교 가능한 가장 가까운 지역의 노동자 소득수준을 협동조합 급여정책의 공정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158쪽)

올해 아이쿱생협 조직 내 권장 시급은 7,000원이다. 아이쿱 임금정책의 기준은 최저임금제가 아니라 경기도 생활임금제이다. 2015년 최저임금은 시급 5,580원이고 경기도 생활임금은 시급 6,810원이다. 아이쿱은 이보다 조금 더 높게 지급한다.

9장 협동조합과 국가. 저자가 활동한 시기에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났다. 전쟁으로 국가 권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독재정부가 여러 국가를 장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독재는 전능한 정치적 신으로 승격되었고, 일반 시민은 그들의 행위를 비난하기는커녕 이에 관해 토론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오로지 복종해야만 한다. 독재자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만으로 처벌을 받는다. 군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리 확장되고, 시민은 국가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퍼진다. 아이들은 그저 조국을 위해 죽으려고 태어난 것이라고 배운다.” (177쪽)

마지막 문장에서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 맨 앞장의 국민교육헌장을 그토록 열심히 외웠던 생각이 난다. 117쪽 인용한 글을 읽으면서 현재의 정치 상황과 겹쳐지는 건 왜일까.

10장 협동조합과 사회개조는 저자의 연설 중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나 또한 페이지 대부분에 밑줄과 꺾임새 모양, 별표를 가장 많이 그린 장이다.
“우리는 폭력으로 헌법을 바꾸고, 경제조직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하는 법령집을 없애고, 황제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우리는 지금 시대가 지닌 기술의 가능성, 개인의 가능성, 조직의 가능성이 허용하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192쪽)
“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이 비열하거나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은 조합원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공동 노력과 열망이 특정한 방향으로 발현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육과 의지력이라는 요소가 가치를 발휘한다.” (201쪽)

(연설의 여운을 위해 잠시 조용히 있겠음)

부침개는 빨리 획 뒤집어야 맛있다. 생각도 획 뒤집으면 재밌다. 협동조합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크고 많다.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항아리에 가두지 말고, 항아리를 확 깨버려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나!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