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낮은 곳으로 부터의 혁신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1. 불행한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위기다. 생활은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은 약하다. 권력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데 실력과 도덕 모두 면에서 실패했다. 구매력 평가로 계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11달러로 선진국에 가깝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 2위, 빈곤 갭 3위, 자살률 1위 등 행복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그동안 아주 바쁘게 달려왔다. 뜨거운 중동에서, 구로·울산·포항의 공단에서 굵은 땀을 흘렸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으로 자식들을 공부시켰고, 힘찬 함성으로 민주화도 달성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는 불평등하며, 권력은 무도하고, 사회는 불행한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재벌 대기업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었다. 성장의 군불이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전파되지 않았다. 국민경제 전체의 활력도 잃어갔다. 낙수효과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가령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보고서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2015년6월)>에서는 상위 20%의 소득비중이 1% 포인트 증가할 때 국민소득은 0.08% 포인트 감소한다고 말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자유주의자의 양심(2007년)>이라는 저서에서 심지어 낙수효과란 거짓말이라고도 단언한다. 경제학적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의 우리 상황을 봐도 진실은 명확하다. 2002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45% 증가했다. 세계 500대 기업에 17개가 선정됐고,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5배나 늘었다. 세계 8대 무역대국, IT 강국, 조강 및 자동차 생산량 5위 등 성공신화는 넘쳐났다. 그런데도 절대빈곤율은 7.8%에서 9.1%로 늘었다. 상대빈곤율은 13.1%에서 14.3%로, 비정규직 비율은 27.4%에서 33.3%로 증가했다. 골목빵집, 동네마트, 길거리커피숍까지 다 장악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배고프다고 아우성친다. 낙수효과라는 ‘메시아’의 도래를 선전하며 우리에게 더 많은 양보를 강요한다. 그 ‘메시아’를 기다리다 대한민국은 그냥 엉망이 되어 버렸다. 노인들은 빈곤에 내몰리고, 중장년층은 노후준비를 위한 여력조차 없다. 청년은 3포·5포·7포세대(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인간관계·희망의 포기)라 스스로 말하며 자괴감에 빠져들고 있다

OECD 1

통계

참고

자료

자살률

33.3명

OECD평균 12.6명

OECD(2011년)

가계채무 상환비율

19.5%

2위 프랑스 12.7%

OECD(2012년 4Q)

노인빈곤율

49.3%

2위 아일랜드 30.6%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2년)

노인자살률

80.3명

65세↑, 10만 명당

OECD(2010년)

남녀임금격차

62.5%

남자 100

OECD(2013년)

출산율

1.23명

OECD평균 1.74명

OECD(2010년)

어린이·청소년행복지수

72.54점

조사 23개국 중 23위

OECD(2013년)

고등교육 이수율

64%

OECD평균 39%

OECD(2011년)

산재사망률

20.99명

조사 21개국 중 1위

OECD(2006년)

연간 노동시간

2,090시간

2위, OECD평균 1,776시간

OECD(2011년)

공공복지 지출

10.4%

GDP대비, OECD평균 21.6%

OECD(2014년)

상위 10% 소득점유율

44.87%

2위, 미국 48.16%

OECD(2012년)

공교육비 민간부담 비중

2.8%

GDP대비, OECD평균 0.9%

OECD(2011년)

실질은퇴연령

남(71.1세),

여(69.8세)

OECD평균 남 64.3세, 여 63.2세

한국노동연구원(2007-12년)

중고령자 고용률(남성)

79.6%

2위, 일본 81.5%

한국노동연구원(2014년)

조이혼율

2.3명

9위, 1,000명당

OECD(2011년)

가계부채 비율

164.2%

가처분소득대비

OECD(2014년)

사교육비 지출비중

2.73%

GDP대비, OECD평균 0.9%

통계청(2014년)

성인남녀 행복지수

59점

100점 만점, 143개국 중 118위

OECD(2015년)

 

 

2. 위기탈출의 방책: 권력의 하방과 내발적 혁신경제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할 일도 명확하다. 경제는 튼튼히, 사회는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위한 경제라는 당연한 사실이다(과제①: 사람중심경제). 복지는 사람에 대한 투자며, 경제적 평등과 정치적 자유는 사람 경쟁력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례, 학적 논거 모두 충분히 존재한다. 미국의 뉴딜정책, 북유럽의 복지 주도형 성장 등 성장과 평등이 배치되지 않음은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는가. 못한다고 말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둘째는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과감한 권력이양이다(과제②: 중앙·지방 혁신). 중앙부처의 간 칸막이 제거는 모든 정부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여전히 유사사업은 남발되며 조정되지 않는다. 2015년에 실시된 ‘청년고용촉진제도’는 중앙정부만으로도 총 224개다. 여기에 지자체는 별도다. 정책이 수요자(국민)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관료)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중앙의 권한을 과감히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지역주민의 자기결정권을 확대시키며 참여를 통한 새로운 활력을 불러올 수 있다. 재정과 사무의 지방이양 목표치를 50대 50으로 설정하며, 분권 확대에 따른 지방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을과 기초지자체 주민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서는 광역 단위의 발전 계획을 세우고(제7조), 이것을 지역발전위원회가 심의(제22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혁신 공간으로서의 기초 단위(군·구·읍·면·동)에 대한 계획은 부재하다. 마을 주민 스스로 마을경제와 복지의 발전 계획을 세우는 것, 그리고 기초지자체가 각각의 계획을 종합하는 것이 지방 발전의 선결과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방자치의 형태도 지역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지방의회 및 지방정부 형태를 주민 스스로가 결정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칭)지방발전법의 제정, 지방자치법의 전면 개정까지 포함한 새로운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는 관(官)에서 민(民)으로 권력이양이다(과제③: 시민참여의 공간확대). 우리는 노동하고 소비하는 단순한 호모에코노미쿠스가 아니다. 때로는 무상노동의 자원봉사자이며 좋은 일에 대한 기부자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속에 존재하는 각종 선의의 자원들이 통상적인 경제활동과 잘 어울렸을 때 우리는 살 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시민사회의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한 법체계의 정비(영국의 Charity commission), 자원봉사확대(미국의 Americorp), 시민자조능력의 확대와 사회혁신(사회적경제활성화정책) 등과 같은 정책 체계가 정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넷째는 ‘밑’으로부터의 새로운 경제혁신이다(과제④: 내발적 혁신경제). 혁신은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 골목상권까지 확산되어야 하며, 그 과정 속에 청년백수, 경력단절여성, 장애인, 고령자까지 참여하면 좋다. 높은 빌딩과 거대한 산업시설만이 아니라 마을 앞 공터, 동사무소 자투리 공간까지 주민 참여의 새로운 활동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참여하는 전인(全人)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는 필자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중심경제는 너무나 당연하다. 내발적 성장은 재벌투자의 낙수효과론이 설명력을 잃었을 때 당연히 도출된다. 시민참여의 공간확대는 국가와 시장이 한계에 직면했을 때 선진국들이 선택한 공통의 정책이었다. 중앙·지방혁신은 지방분권특별법(2004년),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2010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2014년) 이후의 일관된 정책방향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의 뉴스레터 연재를 통해 풀어가야 할 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을 따지는 것이다. 키워드는 바로 권력의 하방(下放)과 내발적(內發的) 혁신경제다. 그리고 그 내용은, ①지방자치제도 전면 재설계(지방자치법 개정), ②경제·복지의 계획수립권한의 지방이양(지방발전법 제정), ③시민사회 확대(시민공익위원회법과 국가봉사법), ④사회적경제활성화정책(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개별관련법의 개정) 등을 포함한다. 연재를 허락한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에 감사드린다.